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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봉봉 Oct 12. 2021

취미의 효용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대하여

나는 스타벅스 애호가였다.

스타벅스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매일같이 2~3잔의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메리카노가 얼마나 맛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타벅스에 앉아서 30~40분 정도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었다. 커피의 맛, 향 같은 건 나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스타벅스를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 핸드드립을 배우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스타벅스에 앉아서 파트너가 만들어주는 아메리카노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면 지금은 나에게 주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찬장을 열고 원두를 고른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시간에 따라 고르는 원두는 달라진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드리퍼와 서버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온도를 맞춰준다. 다시 뜨거운 물을 끓여서 섭씨 85~93도 사이 중 적절한 온도가 되도록 기다린다. 갈아놓은 원두를 드리퍼에 넣고 적절한 온도로 끓여진 물을 조금 붓는다. 원두의 불림 상태를 본다. 예쁘게 부풀어 오른 원두의 모양새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마치 박이추 선생님(대한민국 바리스타 1세대. 강릉 보헤미안 커피점)이라도 된 것처럼 정성스럽게 물을 부어준다. 물을 붓는 양과 붓는 시간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5~7분 남짓 걸린다. 아침마다 그렇게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시간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물론 내가 내린 커피는 전문가들이 내린 커피에 비해 맛이 들쭉날쭉하다. 때로는 너무 쓰고 때로는 너무 연하다. 가끔 원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한 잔의 커피를 만나게 되면 행복하다.


조금 더 맛있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맛있는 원두를 판매하는 집들을 찾아보고 원두의 특성을 공부한다. 유튜브를 통해 바리스타들의 영상을 보고 드립 전문점에 가서 바리스트의 손놀림을 영상으로 남기고 따라 해 본다. 이렇게 커피는 나의 취미가 되었다. 서점에 가서 커피 관련 책을 보면 꺼내서 목차라도 읽어 본다. 동네에서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도 맛을 음미해 본다.


커피라는 취미 덕분에 나의 하루는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1cm 이상은 넓어졌다. 커피를 깊게 팔 수도 있고 커피의 친구인 홍차나 밀크티로 확장될 수도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원두를 공부하다 중남미의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고 드립퍼 브랜드를 조사하다 일본의 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도 있다. 그냥 쉽게 마실 수 있는 한 잔의 커피지만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 보면 그 한 잔의 깊이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배움과 공부는 즐거우면 좋다.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면 그처럼 행복한 것도 없다. 유홍준 선생님이 말했던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보이는 것만큼 사랑한다." 취미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있을까?


영화 <사이드웨이>의 주인공 마일스는 와인 애호가이다. 와이너리마다 어떤 와인이 나오는지 줄줄 꿰고 있으며 와인의 향만 맡으면 그 와인이 어느 와이너리에서 어떤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인 지 알아낸다. 그런 그의 와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은 이혼과 출판 거절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위로를 준다.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공부하고 익히고 앎을 통해 더욱 사랑하고 깊이 빠지는 선순환의 과정이야말로 취미가 주는 효용이 아닐까? 오늘도 출근 전 잠시 시간을 내서 에콰도르 원두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신다. 커피의 쌉쌀한 맛 속에 숨어 있는 체리향이 느껴진다. 적도의 열기를 들이키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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