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내켜서 움직임
"능동"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내켜서 움직이거나 작용함이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를 삶에 비추어 봤을 때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 능동적으로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문득 던져 보았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거,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거, 집에서 티비를 보는 거, 끼니가 되서 밥을 먹는 거, 때가 되서 잠을 자는 것... 이 중 "능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은 얼마나 될까?
새벽 5시50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아침에 달리기를 하러 갈까 고민을 했지만 집에 있는 반신욕기에 앉아서 유튜브로 강의를 보기로 했다.
15분 쯤 지났을까? 보고 있던 강의에 집중에 되지 않았다. 옆에 치워둔 스마트폰을 다시 들었다. 내 안면을 빠르게 인식한 스마트폰은 나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유튜브 속의 강사는 여전히 열심히 자기의 노하우를 나에게 떠들어 댄다.
난 귀로는 그 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손으로는 바쁘게 스크롤을 하고 눈으로는 흘러가는 활자를 보면서 킥킥거렸다.
이렇게 50분 정도 유튜브로 강의를 보고 난 뒤 난 다이어리에 이렇게 적었다.
"재테크 강의 시청"
나는 재테크 공부를 했던 걸까? 아니면 공부하는 척 하면서 60분을 소모했던걸까?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보낸 60분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60분의 시간동안 내 스스로 내켜서 하거나 내가 스스로 움직인 행동이 없다. 반신욕도 하고 강의도 듣고 스마트폰으로 여러가지 정보도 습득했지만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능동"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능동"적인 행동을 할 때 비로소 몰입할 수 있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보통은 세네번 많게는 다섯번 이상 달린다. 벌써 3년은 지속되었다. 온전히 내 의지가 실행으로 옮겨지고 그로 인한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이 행동이 바로 달리기다.
그래서 난 달릴 때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몰입할 수 있다. 발소리와 숨소리를 유지하는데 집중하다보면 망상이 사라지고 고요해진다. 달릴 때 찾아오는 몰입감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달리기 뿐 아니라 우리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릴 때 묘한 쾌감이 밀려오는 건 우리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동작을 수행하고 그 동작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수정하는 그 행위처럼 능동적인 게 있을까? 그래서 운동은 우리에게 쾌감을 주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운동이 갖는 힘이다.
글쓰기도 똑같다.
남의 글을 읽고, 남의 말을 듣고, 남이 만든 영상을 보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의 밀도와 단 한 글자를 쓰더라도 내가 공들여 생각하고 이 단어, 저 단어를 조합하고 썼던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그 행위의 밀도를 따라갈 수 없다.
내가 획득한 정보를 체화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언제나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을 이해하게 도와준다. 때로는 내가 쓴 글로 타인을 가르치기도 하고 타인을 가르치면 교습효과도 누리게 된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이런 가치를 지니는 건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하더라도 텍스트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오래 남길 수는 없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건 능동적인 참여와 실행이다.
책읽기, 운동하기. 글쓰기는 우리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능동"적인 행동이다.
이 능동적인 행동의 반복은 우리의 삶에 아주 사소한 성취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성취는 쌓이고 쌓여 우리의 정체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몸을 능동적으로 움직여보자.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