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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현 Feb 20. 2018

사는 게 바빠서


 설 연휴 내내 혼자 서울 집에 있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는 건 거진 십년이 다 되었다. 오히려 나는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텅 빈 서울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 시기에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혼자인 것 같은 그런 쓸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애초에 다들 어디론가 가고 없기 때문에, 혼자인 것이 당연한 것처럼 담담하게 지낼 수 있다. 


 한달 뒤 3월에는 나의 네번째 에세이가 나올 예정이다. 원고는 300페이지를 넘기며 끝을 냈다. 지난 일년 반 동안의 내 모든 감정을 끌어당겨 쓴 글은 나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쓰는 동안 참 많이도 웃고 울었다. 원고는  끝났지만 이제는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후 한 달동안 온갖 재료와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봤지만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 백장의 종이를 날리고 지쳐서 한동안 손을 놓았지만- 그려야 했다, 어떻게든. 내 원고에 그림을 그릴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전과 갈비를 먹는 설 연휴동안, 집에서 배달음식과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림이 집중한다고 잘 그려지는 공식같은 것이 있을리 없기에 방황하는 시간이 반절 이상이었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봤다가 책상에 엎드려 짜증냈다가, 라디오를 틀었다가 노래를 틀었다가, 베란다에 나가기도 귀찮아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면서,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좌절했다. 그러다가 한번 집중하면 다섯시간 동안 고개 한번 들지 않고 그려댔다. 그렇게 애를 써가며 백 몇십장의 종이를 낭비했고 완성된 그림은 19장이었다. 겨우 19장,이 아니라 19장 씩이나 그린 것이다. 수만번 그림을 그렸지만 늘 어렵고 힘이 든다.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은 평생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반나절을 기절한 듯 잠을 자고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했다. 설거지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도 한 가득이었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다. 또 나는 살기위해 온갖 쓰레기를 만들었네. 또 나는 작품을 한답시고 온갖 종이를 낭비했네. 하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살아야만 한다. 먹고 싶지 않은 밥을 먹고,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귀찮은 외출을 하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살아가고 있다. 해야 할 일들보다는 하고 싶은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도 모든 것이 어렵다. 언제쯤 능숙해지고 편안해질까. 언제쯤 책임져야 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을 영원히 그래야만 할까. 사는 게 참 바쁘고 어렵다.





2018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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