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쭉 그럴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이 사실을 모르길 바래.
/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서른 세살이 된지 두달 째. 요즘 내 삶을 들여다 본다.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카페에 가는 것. 누군가와 함께가 아니라 거의 혼자 간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다 읽지 않기 때문에 며칠 단위로 책이 바뀐다. 페이지를 넘겨가며 듬성듬성 읽다가 마음이 가는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어둔다. 노트는 정리되지 않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채워져 간다. 내 정신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 같다. 정리하고 싶어서 넣어두지만 결국 뒤죽박죽 엉킨채 가득 차기만 한 서랍같이.
오늘도 어김없이 카페에 앉아 일정을 정리하고, 어제 출판사에서 했던 회의의 내용에 따라 원고를 수정하고 다섯통의 메일을 보냈다. 잠시 쉬면서 커피를 한 모금, 노트의 앞장을 뒤적이니 오른쪽 윗 페이지에 적어둔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음-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조차 읽은 적이 없는데, 어떤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하필 이걸 적어둔 것일까? 모르겠지만 여튼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언젠가의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위해 적어둔 문장일지도.
자리에 혼자 앉아 무엇을 한다는 것. 그것이 일이 되든 휴식이 되든 그런 시간을 가지면 결국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번 주에 나는 무엇을 했고, 다음 주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굴 만난다거나 무엇을 갖고 싶다던가- 그 모든 것은 결국 내게 주어진 책임이거나 스스로의 욕망에 기인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이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는 게 바빠서 일수도 있고, 애초에 자신에 대해 궁금증이 없는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쩌다 보니 갖게 된 작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내 성격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인간으로 태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의 90프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낡아가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으며, 지나치게 멀리가서 세상의 불공평함과 지구와의 공존까지 문제가 퍼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원점은 '어떻게 살지'였다. 아주 사소하고 뻔한 것들이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빨래 세제는 무슨 향을 쓸 것인가, 혹은 새 옷과 운동화를 사고 싶으니 돈을 벌어야 겠다 같은 것. 그딴 것들이 사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나에게 필요한 건 커피를 사 마실 돈 오천원과 조용한 카페니까.
일년 반 동안 쓰던 원고를 끝내고 글을 안쓴지 두달이 다 되어간다. 매일 글을 쓰다가 글을 안 쓰니 마냥 노는 인간같다. 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뭐라도 다시 써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로 했다. 주제는 없고 뭐라도 쓴다.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지. 이런 글을 사람들이 좋다고 읽어주는 게 가끔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나에 대한 글을 써서 책을 내고, 그걸 사람들이 사서 읽고 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 가끔은 기적같다. 그러니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늘 고맙습니다.)
오늘은 퀜치 커피에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가오픈 중이라 아직 사람이 많이 없다. 이런 분위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하나 둘 찾아와 조용히 시간을 누리고 가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손님 중 한명이다. 예닐곱 명의 손님이 떠날 때까지도 계속 자리해 있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보내는 것 같아 한잔을 더 주문했다. 밤이 늦었으니 커피말고 따뜻한 우유로. 새벽에 전자렌지에 돌려 마시는 우유와 달리 곱고 세밀한 거품이 올려진 따뜻한 우유가 새하얀 잔에 담겨 나왔다. 누림씨가 나눠주신 귤 네조각을 먹고, 다시 글을 쓴다.
2018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