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현 Jan 04. 2019

새해 인사

연애편지 #17


12월 31일을 1시간 남겨두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어. 거기는 아직 아침 여섯시였고 아직 하루가 남았더라. 요즘 혼자인 시간이 좋다는 친구는 다음 달에 낯선 나라에 가기로 결심했대.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에 그러고 싶다고 했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새해 다짐은 평범하고 보통인 걸로 했으면 좋겠어. 운동을 시작하자던가 담배를 끊는다던가 연애를 하겠다던가. 그래서 나는 4년동안 짧았던 머리를 이제는 좀 길러보기로 하고, 운전면허도 따려고. 떠나지 않겠다는 헛된 결심은 하지 않아. 해봤자 지키지 못할 거라는 걸 이제 알거든.


나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작년 한 해 꽤 자주 떠나 있었는데도, 지금도 여전해. 나는 이곳이 아닌 어디로든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기서 살아. 이곳에 있는 게 불행한 건 아니야, 떠나면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야. 그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한 단 하나의 탈출구 같은 거지.


사랑은 늘 내게 떠나라고, 잊으라고 했었는데, 사실 먼저 떠난 건 나였는지도 몰라.


오늘은 따뜻한 나라에서 안부를 전해온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우린 너무 많이 떠나있었다고 하더라.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이유로 떠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떠나 있었다던 과거형의 말, 이젠 그만 좀 떠나자는 말이었을까 과거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각. 새해엔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자는 바램.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떠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면 더 행복하게 떠날 수 있게 될까.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난 올해도 어딘가로 갈거야, 나는 또 너를 두고 떠나겠지만 결국은 돌아올거야. 다만 기다리다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을 놓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데로 두자.


새해가 왔고 한살을 더 먹었어.

모두가 그렇듯이, 다 그렇듯이. 너도 나도.

좋아하는 술집에 가서 따뜻한 와인을 마시거나 커다란 케이크를 두고 초에 불을 붙이는 것들. 그런 것들에 감사하고 있어. 무엇을 축하하는 마음과 무엇을 소원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매년 살잖아.


뻔하지만 진심뿐인 인사를 전하며.

해피 뉴이어.




_


/봉현

이전 16화 감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