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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30. 2023

강아지상의 강아지사랑

같은 아파트 라인 3층에 은봉이가 산다.

우리 집은 6층인데, 엘베를 타고 내려가면서 3층에 엘베가 설 것인가 늘 두근거리곤 한다.

은봉이는 꼬동드툴레아라는 견종의  강아지이다.


네이버에 꼬동드툴레아라고 치면 나오는 수많은 사진을 보며 어떤 아파트 3층에 산다는 강아지를 그려보겠지만, 그 강아지가 아니다. 훨씬, 상상을 초월하게 귀엽다.


은봉이를 처음 만난 것은 3층 고등학생 총각, 즉 그 집 둘째 아드님이 산책을 시키던 밤이었다(그렇다. 우린 은봉이를 좋아한 나머지 그 집 나머지 구성원까지 모두 알게되었다).

은봉이는 나와 연수를 보자마자 웃었다. 꼬리도 흔들고 다리 옆에 서서 우릴 올려다 보았다. 정말 귀엽고 머리 털이 공처럼 동그란 강아지가 갑자기 아는 척을 하자 난 다짜고짜 그 학생에게 물었다.


"얘는...무슨 강아지인가요?"

"아, 꼬동 드 툴레아예요"


꼬와 디귿 발음밖에 듣지 못했으나 엘베는 금방 3층에 도착했다. 나와 연수의 리스닝을 조합하여 써치 끝에 그 강아지 견종이 꼬동 드 툴레아임을 알게 됐다.

몇 주간 익명의 3층 강아지는 우리집에서 꼬동이라고 불렸다. 견종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었음에도 꼬동이가 된 것은 아주 간단했다.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연욱이는 누나와 엄마에게 꼬동이에 대한 얘기를 듣다가 어느 날부터 꼬동이를 꽃등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단어 중 가장 유사한 단어를 택한 것인데, 그 귀여운 3층 강아지가 꽃등심인건 좀 웃겼다. 결국 모두가 꽃등심으로 그 강아지를 부르기 전에 이름을 알아내야 했다.


분리수거를 나간 어느날, 안경을 낀, 꽤 젊어보이는 중년의 언니(나도 중년이니까 이제 노년 전인 여자사람은 다 언니다)가 꽃등심을 안고 있었다. 아! 라며 그 강아지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어, 어, 꽃등...."


그 날 꽃등심이라고 다 뱉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 언니는 고등학생 총각의 엄마였다. 즉 꽃등심의 엄마이기도 했다. 딱 봐도 꽃등심은 엄마와 산책 겸 분리수거를 나와서 더욱 행복해했다.


"이름이 뭔가요?"

"아, 은봉이예요"


이제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집은 각자 '은봉이가 아저씨랑 산책하는 것을 보았다, 아줌마랑 나온 것을 보았다, 오빠랑 걷고 있더라' 등의 목격담을 공유하곤 했다.



우리집이 은봉이를 얼마나 예의있게 좋아하는지 최근 일화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야근을 마치고, 차를 몰고 귀가하여,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려서 뒤를 돌았는데, 약 3미터 앞에 은봉이와 은봉어머니가 산책을 가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 선채로 연수를 불렀다. 은봉이의 '은'까지 말한 것 같은데 전화기 너머로 연수 신발신는 소리가 들렸다.

아슬아슬하게 엘베를 놓친 연수는 1분이 지나서야 1층 현관에 도착했다. 그 사이 은봉이는 단지 정문 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와 연수는 산책을 빙자하여 은봉이의 산책코스를 추리하며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걸어갔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갈림길이 있는게 함정이었다. 정문 앞엔 횡단보도도 있으니 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았다. 이 밤에 산책하며 길을 건너갔을까를 두고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추리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제 단념하고 귀가하려는 찰나, 은봉이와 은봉어머니로 보이는 실루엣이 저 멀리서 댜가오는게 보였다.!


.

헉! 갑자기, 연수와 나는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웃는척을 하였다. 난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수는 제법 소질이 있었다.

"친구랑 떡볶이를?아하하, 재밌다~"(어색하기 그지없다)

"그치? 그렇다니까~"(뭐가?)


"어머,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은봉이랑 산책 나오셨나봐요"

"네, 따님하고 어디 다녀오세요?"

"아, 산책이요.^^"(시간은 밤 10시, 난 풀 정장 차림이다)


은봉이가 폴짝 뛰어올라 쪼그리고 앉아있던 내 무릎에 발을 댄다. 보통 강아지들은 날 좋아한다. 눈 끝이 쳐진 나는 전형적인 강아지 상인데, 그 덕에 종족애 비슷한 것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나와 연수는 은봉이의 줄을 잡고(아파트 1층까지 잡게 해주셨다),

우연히(너무나 인위적인) 만난 기회에 은봉이가 뭘 좋아하고 뭘 무서워하는지. 집에선 누구 말을 제일 잘 듣는지, 언제 이 집에 입양온 것인지 등에 대해 은봉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왔다.


길어야 10분도 안되는 짧은 만남만으로도 부쩍 친해진 것 같다. 우리가 은봉이를 마주한 건 다 더해도 15분도 안될텐데 집에서는 은봉이 얘기를 하루에 한번은 하는 것 같다. 그 날 이후 차를 몰고 퇴근한 날이면 사방을 한번 둘러본다.


은봉이네가 규칙적인 산책시간이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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