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와 연욱이는 참 좋은 아이들이다.
종종 그들에게 말하듯, 그들의 엄마아빠보다도 나은 사람인 것 같다. 연수는 쿨하고 친절해서 취학 이후 반 개구쟁이 남학생들의 짝으로 지정되는 일이 많았다. 또한 학기가 시작하고 학부모 상담 주간이 오면 부담없이 학교를 가게 해주었다(선생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점!). 연욱인 다정하고 관찰력이 뛰어나다. 어버이날 편지에 '우릴 위해 일찍 오려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쓰는 그런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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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현안은 닌텐도이다. 연욱인 너무 너무 사고 싶어 했다가 나의 단호한 반대에 부딪히자, 안 갖고싶어하는 척 연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 반대의 이유는 간명하다. 현재 아이들 게임 시간(월, 목 30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연욱인 나처럼 게임에 빠져들 공산이 매우 크다.
실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것 못지 않게 중독이 잘 되는 사람이 따로 있다. 누군가는 똑같이 게임기가 집에 있어도 좀 하고 멈출 수 있지만, 누군가는 새벽에도 몰래 일어나 게임을 하고야 만다. 난, 나와 연욱이를 중독파로 분류한다.
즉, 난 닌텐도를 마주할 연욱이가 현명하게 이 신문물을 사용할거란 믿음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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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 주, 연욱이와 1학년부터 친구인 권이네를 만났다. 지난 만남 때까지 핸드폰이 없던 권이가 핸드폰을 들고 나타났다.
"어? 권이 핸드폰 샀네?"
"연욱엄마, 이게 사연이 많아, 작년 가을에 권이 할아버지가 핸드폰 사줄건지 가지고 나랑 권이가 맨날 투닥이니까 '성경 1권을 다 읽으면 할아버지가 사주께' 그러시는거야. 근데 연욱엄마 알지? 성경 1권 읽는거 진짜 어렵잖아. 그래서 내가 '좋아요!' 한거지. 근데 있잖아? 권이가 지난 달에 6개월만에 다 읽었어."
그럴리가! 나도 모르게 외쳤다. 읽어본 사람(혹은 읽어보려 시도한 사람, 맨날 아담과 하와만 보는 사람, 맨날 이스라엘 사람들 숫자세다가 끝나는 사람들 모두 포함)은 안다. 성경 1독은 진짜 힘든 일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1독이 가능해요?"
"1독 프로그램도 많대, 가능한가봐. 밥먹기 전에, 밥먹고 나서, 심심할 때, 로봇과학 다녀와서, 자기 전에 계속 보더라구, 가끔 단어도 물어보고. 그러더니 다 읽었어."
그런데.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닌텐도가 마땅한 정도의 노력. 성경 1독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닌텐도 구입 계획을 발표했다.
마치 닌텐도 없어도 평생 살 것처럼 하던 연욱이가 눈을 반짝이며 어린이성경을 들고 왔다.
"이거? 이거 다 읽으면 사는거야??"
"응. 그거 다 읽으면 사는거야"
(연욱이 생각 중)
"근데, 내가 안읽고 읽었다고 할 수도 있잖아. 막 대충 읽을 수도 있고."
"응,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읽어도 엄만 알 수 없을거야. 내용을 시험보고 그럴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엄만 연욱이가 '다 읽었어'라고 말할 땐, 읽을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잘, 꼼꼼히 읽은 거라고 믿어. 엄마가 그만큼 연욱이를 믿지 못하면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거야."
연욱이는 정말, 정말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벅찬 감동이 가득 담긴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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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잠시 후 연욱이는 어린이 성경을 든 채 또 내게 온다.
"닌텐도를 사면..얼마나 자주 할 수 있는거야?"
"그건 아직 안 정했어. 그런데, 연욱이가 시간이 오래 걸려도 꾸준히 노력해서 성경을 다 읽는다는건, 닌텐도가 있어도 그걸 잘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 엄마는 연욱이가 성경을 다 읽을 수 있고, 닌텐도도 당당히 사서 잘 사용할거라 믿어."
연욱이는 너무 기쁘게 웃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거리며 성경읽으러 간다.
난 '감시'나 '지시'가 반복되면 그걸 피할 생각을 한다. 그래야 성취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믿음'에 길들여지면 부응하고 싶은게 아닐까. 그런 자신을 보면 엄청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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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욱이의 1독을 응원해. 같이 손잡고 닌텐도 사러가자. 돈 모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