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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11. 2023

엄마의 이상형-1

우리 집은 칭찬이 과도한 집이었다.

칭찬이 정말 난무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전국을 강타하던 1990년대, 우리 집에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틀어놓고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엄만 왜 저기 안나간거야?"(나, 당시 초3)

"그니까,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언니, 당시 초6)

"바빠서 못 나가셨나봐, 저기 나오신 분들이 운이 좋네"(아빠)

우리 집에선 모래시계 때 언니가 고현정과 똑같이 생겨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만의 독특한 여론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엄만 풀떼기를 좋아하셨고 말랐다. 고기를 잘 안드셔서 마른건지, 말라서 고기가 들어갈 공간이 없는건지. 하여간 튀긴 음식, 구운 고기가 맛이 없다고 하셨다. 덕분에 우리집 김치찌개에는 참치가, 미역국에는 홍합이, 상추쌈에는 고등어가 들어갔다. 난 그 조합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학교 반찬으로 소시지에 계란을 입혀오거나 소고기 무국이나 미역국을 싸오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대학 때는 학교 앞에 있는 수많은 고기집들이 망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저녁만 되면 그 고기집들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아주 신기한 사람들일세.


엄마는 또한 머리카락이 얇았다. 그건 중학교 때 알게 되었다. 난 머리를 감았다가 말리면 머리가 저절로 붕 떠서 '사자'로 불리기도 핬는데, 엄마의 머리는 차분했다. 그리고 허벅지가 얇았다. 청바지를 입으면 엄마는 끼는 부분이 없었다. 늘 통바지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모자가 다 맞았다. 엄마는 무슨 모자를 쓰든 모자가 남아서 옆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아무리봐도 나랑 달랐다. 우선 머리통 크기. 스피드스케이트 선수였을 때, 나만, 우리팀에서 나만 헬멧을 주문 제작했다. 6학년 언니오빠도 아니고 오직 나만 일반 헬멧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들 날 위로하고자 머리 전체가 큰것이 아니고 정수리 옆에가 튀어나온 것이라고 말했으나 주문 제작 헬멧을 써야하는 내게, 그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허벅지. 이건 너무 명백해서 설명하려니 민망할 정도인데, 태권도를 시작한 시절부터 난 어깨와 허벅지가 튼튼했다. 돌려차기도 옆차기도 자고로 허벅지 근육 없이는 안되는 것이다. 마지막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귀밑 3센치라는 엄격한 학칙 시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슈다. 내 단발은 머리를 감았다하면 사자머리가 되었다. 왜 가라앉지를 않는 것인가.


그럼에도 칭찬의 바다 속에 인어공주로 사는 나는 바깥세상의 소리를 걸러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 날은 엄마가 학교 학부모 총회에 온 날이었다. 다른 학부모 위원들은 우리 엄마와 나만 매칭시키지 못했다.

집에 오는 길에도 친구들은 너희 엄마셔?를 연발했다. 매우 뿌듯했다. 약간 오묘했지만.

집에 와서 엄마에게 "친구들이 엄마랑 나랑 안닮았대, 엄마 무지 예쁘대"라고 했다, 명랑하게.

엄마가 가만히 날 보더니 고백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세가지 외모 컴플렉스가 있었어. 첫번째는 작은 머리크기였어.(엄마의 말투가 얼마나 진지한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왜이리 머리가 작을까. 왠지 새대가리 같았어(진짜 이 표현을 쓰셨다). 머리가 크면 똑똑해보일 것 같았어. 그리고 허벅지가 너무 얇았어. 다리 힘이 없고 비리비리해보여서 허벅지가 튼튼해보이고 싶었어. 그리고 머리카락이 굵은게 부러웠어. 그런 머리카락있지, 머리카락 뽑아서 누가 나중에 끊어지나 시합하면 늘이기는 반곱슬. 직모는 파마도 안 먹고 나이들수록 더 불편해."


난 점점 엄마의 고백에 빠져들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엄마의 말투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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