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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11. 2023

엄마의 이상형-2

(지난 이야기 : 엄마는 당신의 외모 콤플렉스 3개를 갑자기 딸에게 털어놓는다. 그 3개는 바로 작은 머리크기, 얇은 허벅지, 그리고 가는 직모 머리카락! 엄마는 그렇게 고백을 이어가는데...)


이때, 엄마의 표정은 인자하고 사랑 넘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 공평하고 좋으시더라. 엄마가 이 3가지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거든. 

그랬더니 글쎄, 엄마의 이상형을 딸로 보내주신거야. 그래서 이렇게 머리도 크고 허벅지도 튼튼하고 반곱슬 머리카락을 가진 니가 태어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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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게 글로 쓰면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우리 집은 칭찬이 가득했고, 난 이 집에서 약 15년 정도 길러진 상황이었으며, 엄마는 농담을 즐겨하는 분이 아니셨다. 난 진정 내가 엄마의 이상형이라는 사실에 크게 기뻤다. 엄마가 그간 외모 컴플렉스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걱정도 되었다. 엄마에게 '청바지 잘 어울린다'는 말을 괜히 했나 싶었다. 앞으로 엄마가 파마를 다녀오면 신경써서 '엄마, 오늘 파마가 잘 먹었네~'라고 말씀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내 머리에 맞는 캡 모자가 없어서 햇볕이 강한 날 조금 불편했지만, 그깟 모자는 안써도 그만이었다. 다행히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를 그만둬서 헬맷 쓸 일이 없었으므로 캡 모자만 안쓰면 나의 머리크기나 모양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이상형인데, 뭐.


당시 난 같은 학교 친구들과 3:3 나이키배 농구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초등학교부터 같이 다닌 동네 친구로 구성되어 있어서 팀원들이 전부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왔고, 엄마도 다 알던 애들이었다. 농구를 마치고 컵라면을 먹다가 같은 팀 친구가 날 '사자야'라고 불렀다. 하... 이제사 그렇게 부르다니. 그 날은 엄마의 이상형이라는 사실을 꼭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에 누군가 사자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렸던 날이다. 이제사 나를 사자라고 부르다니.

내가 거만한 표정으로 피식 웃자 친구는 왜 웃냐고 물어보았다. 난, '하... 내 입으로 말하기 좀 쑥쓰럽지만'이라는 말로 얼마전 들었던 엄마의 고백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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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웃었다. 이미 엄마의 컴플렉스 부분부터 웃기 시작했는데, 이상형 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나의 굳건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며, 친구들은 한 목소리로 '어머님도, 너도, 정말 존경한다'고 결연하게 외쳤다.


그 이후로도 난 극강의 외모 자신감을 뽐내며, 학창시절을 마쳤다. 대학생 시절, 다소 어려운 시험을 거치며 피골이 상접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가볍게 극복했고, 꽤나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첫째 딸을 낳았다.

안타깝게도 연수는 친가의 호리호리 체형 DNA를 닮아 얼굴이 주먹만하고, 머리통도 조그만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마치 연수 양 옆에 보이지않는 투명 벽이 늘 서있는 기분이었다. 연수는 옆으로는 늘어나지 않고 오직 위로만 자랐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엄마들도 위로만 뻗어가는 연수를 보며 신기하다고 말했다. '옆으로 늘어나지 않으면 위로 자랄 것도 없다'며 잘 먹여야 한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연수는 먹고 싶은 만큼 먹으면서도 위로 자라났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연수가 4살 때, 외할머니가 잠시 돌봐주러 오셨던 더운 여름, 열대야가 심한 어느 밤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연수가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여리여리하다'였다. 조금 눈썰미가 있는 집에서는 꼭 그렇게 작은 두상을 부러워했다. 한번 정도 '처음에 만났을 때 연수엄마인 걸 매칭을 못 시켰잖아요 호호'라는 말도 듣긴했다.

주말에도 잠시 회사를 다녀와서 매우 피곤했던 차라 일찍 자리에 누웠다. 연수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연수 냄새를 맡으니 금새 잠이 올 것 같았다.

이쁜 딸과 손녀를 바라보던 엄마는 연수의 길쭉한 다리를 쭉쭉 당기며 마사지를 해주셨다.


"예쁜 우리 연수, 어진 연수, 우리 연수 (중략) 우리 연수 다리도 이렇게 늘씬 한 것 보소, 허벅지가 이렇게 얇아서 얼마나 다행인고. 어찌 이리 머리통도 작고 머리카락도 하늘~하늘 할까, 아이고 예뻐라, 다행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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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벌떡 일어났다.


"헐! 엄마, 내가 이상형이라매!"

"(당황하지도 않으신다) 그러엄, 니가 이상형이지, 그냥 연수는 다행이라는거지, 이상형은 너래두"



엄마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는데...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이상형은 분명 나인데, 어떻게 동시에 연수가 다행일 수 있는거지.

세상의 온갖 논리를 들으며 해결하는 직업인데도 이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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