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이모 Jun 16. 2023

회사랑 잘 지내기

회사는 인풋대로 아웃풋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었다.

내가 애정을 쏟으면 소금물처럼 더 애정에 갈증을 느껴서 가진 것을 탈탈 털어넣게 되고,

내 애정이 식으면 되려 조금 다정해졌다.


한 회사에서 햇수로 12년 차에 접어든 요즘, 퇴근 길에 회사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회사에서의 task는 세가지로 압축되었다.

1. 급한 일, 너무 급해서 숨이 넘어갈 듯한 독촉을 받는다.

2. 중요한 일, 급한 일 먼저 끝내야하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가 급한 일 끝나면 다음 급한 일 올 때까지 중요한 일을 독촉한다.

3. 날 위한 일


일단 회사일은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있나싶다. 시시각각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자주본다.


그리고 3번이 무슨 task냐 싶을 수 있지만... 회사란 이중적이어서 회사일에 헌신해야 한다고 끝없이 쇠뇌하다가 뜬금없이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이나 관리를 했냐고 묻는다.


실상 날 위한 일은 회사 입장에선 아무것도 안한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이다. 사랑의 작대기가 회사를 향하지않고 날 향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그런데 3번을 하지 않으면 지친다. 그냥 약간 멍해지는 일상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살아있음을 자각할 만한 어떠한 자극도 없이 급한 일 독촉으로 아침을 열고 중요한 일을 해야한다는 고민으로 하루를 닫는 그 굴레에 딱 갇히는 기분. 그래서 어떤 동료는 그만 두지 않기 위해, 더 오래 일하기 위해 머리 속에서 회사를 지우는  잠깐의 시간을 찾아 헤매곤 했다.


이런 회사는 애정을 보인만큼 나에게 늘 뭐라도 쥐어주던 (그게 근육이 되었든, 심폐지구력이 되었든) 운동들과는 달랐다. 급하고 중요한 일만 쌓여있는 늘 똑같은 어느 날, 회사와 함께 아이를 키운 것 같고 회사 덕에 돈을 벌었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지..라고 잠시 잠깐 회상에 젖을 때면 잔인하게 또 "일"은 갈 곳을 찾아 날 방문하고 다정한 눈을 보며 기뻐하고 순식간에 텐트를 친다.


엊그제 회의에서 이미 할당량을 초과해서 과부하에 걸린 부원을 바라보며 또 다시 일을 배당하려는 부장님과의 밀당이 생각난다. 부장님은 눈을 맞춰주는 단 한 사람을 찾으며 이 일의 의미를 천천히 설명했다. 누군가 손을 들 것이란 확신, 그 손을 민망하지 않게 즉시 알아보려는 다짐이 부장실 공기를 매웠다. 그러나, 급하고 중요한 그대를 예쁘게 포장까지 하는 건 쉽지않았다. 아이컨택이 주특기인 나도 부장님의 설명듣다보 오히려 벽과 천장 사이 어딘가로 시선이 고정되는걸 느꼈다. 결국 그 일을 맡은건,  창밖의 전선에 눈을 고정시키려다가 무언가 궁금해서, 일순간 정신을 차렸던, 그 찰나의 순간 부장님을 바라본, 후배였다.


오늘 새벽도 날 위해 잠시 시간을 떼놓는다. 간밤에 글 하나 쓰는 시간도 떼놓는다. 오늘은 밥 먹은 직후에도 깨알같은 20분을 확보하기 위해 아침부터 사투를 벌일 예정이다. 이렇게 떼놓은 미세한 하루의 파편이 오늘 내가 부리는 특급사치가 될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무도의 역사-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