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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17. 2023

풀멍

흔히 말하는 금손에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음식만들기 분야의 금손. 같은 레서피를 보고 하다가 갑자기 견과류나 허브를 뿌려서 데코를 해서 푸드잡지보다 예쁘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다음으론 만들기를 잘하는 금손. 집에 가면 소파도 가방도 옷도 수제작품만 놓여있다는 풍문. 그리고 식집사 금손. 푸바오를 돌보신 할아버지의 식물 버전이다. 식집사 금손은 분명 화분과 흙만 있었을지라도 숲을 일궈내는 능력이 있다.


식집사(고양이 집사처럼 식물을 돌보는 것이 임무인 사람들)인 엄마는 집크기에 상관없이 화원을 일궜다. 어느 시즌에는 화원에 알로에만 있었다. 누군가는 동남아 가기 전 알로에 젤을 사면서, 혹은 알로에봉봉을 마시면서 알로에를 알았겠지만 난 집 베란다에 자라는 알로에를 먼저 접했다. 베란다 화원이 성황일 때는 천장에 닿을 화분도 있었다. 그 큰 나무는 봄만 되면 새잎을 틔웠다.사람이나 식물이나 새잎은 티가 난다. 색이 연두다. 때묻지 않아 연두색인것 같아서 연두 잎이 피면 만지지도 못했다. 진초록이 되어버릴까봐.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면서 게임과 운동과 티비를 전폐했던 때가 있었다. 하루종일 내가 하는 말은 안녕하세요 3번과 감사합니다 2번쯤이었다. 버스타고 독서실 갈때, 독서실에서 돌아올 때, 독서실 총무님께-"안녕하세요'. 점심식당 아주머니께, 저녁 빵사는 마트에서-"감사합니다". 직장과 내 말주변을 맞바꿔야하나 싶었다.

그 무렵 생일선물로 행운목을 받았다. 버스타러 가면서 운목이에게 "다녀올께", 독서실 다녀와서 물을 다 흡수한 운목이에게 "어구, 잘했네. 난 진도를 다 못끝냈는데 운목인 물 다마셨네?", 그밖에 잠들기 전까지 "운목이 이뻐라" 반복. 게임, 운동, 티비에 비하기엔 매우 단조로울 운목이 키우기는 위의 요소들이 차단되고 오직 공부냐 운목이냐 하는 비교선상에 서자,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짜릿하고 기다려지고 계속 생각나는 것이 되었다. 운목이를 보자니 마지막 잎새에 왜 자신의 완쾌를 걸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운목이는 나의 무지로 뿌리정리도 안되고 키도 그대로 였지만 새 잎을 피우고 작은 반찬접시에 담겨있는 물을 모두 마셨다. 마신만큼 잎을 피우고 뿌리를 뻗었다.


풀멍은 진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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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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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집에 허브화분이 생겼다. 연수가 다이소에서 충동구매해온 씨앗 덕이다. 그래도 허브생김새나 볼까 싶어 싹을 틔웠다. 어렵사리 녹색잎이 하나 올라오자 혹 물이 많을까 적을까 계속 들여다보았다.

물주러 베란다로 데리고 갔더니 축늘어져 시들시들한 화분이 눈에 띄었다. 이름은 몰라도 잎이 동글동글하고 빨간 열매도 열리는 녀석인데 장마철 신문지처럼 눅눅하게 늘어져있다.


가지도 쳐보고 분무기로 물도 줘보고, 흙도 만져보고 잎도 쓰다듬었더니 허브도 빨간열매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가 아주 바른 것이 키가 크려나보다.


이번 주는 생명들이 살 맛나게 한 것 같으니 아주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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