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이모 Jun 15. 2023

무도의 역사-2

-태권도편

어제는 미열과 근육통이 있었다. 하루 더 지나니 치과 치료받았던 곳 주변이 넓게 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구멍 입구까지 헐게 된 이 상황을 어떻게 하루 더 지나서 알게 되는가. 그건 다분히 무도의 정신 탓이다.


태권도를 시작한 건 그저 가벼운 생각 때문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자 주변 남자아이들이 태권도를 시작했다. 왠지 나빼고 다 태권도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유단자가 되어 남사친들을 놀래켜줄 심산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태권도장을 등록했다.


집에서 무려 도보 30분 떨어져있던 그 도장을(우리집까지 차량운행이 되었다는게 신기하다) 운영하시던 관장님은 정신교육을 강조하셨다. 태권도에서 '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발차기(태)나 주먹(권) 보다도 '도'가 중요하다는 건, 인성이 좀 괜찮으면 가산점을 받는다는건가. 그 지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관장님은 "(장대비가 내려서 오늘 태권도를 못 가겠다는 학생이 있던 날) 비와서 안나오고, 바람불어서 안나오고, 더워서 안나오고, 추워서 안나오면 언제 나오냐, 그냥 아예 오지마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비 오는 날, 더운 날, 또는 추운 날 아침에는 극기훈련 하는 느낌으로 더 부지런을 떠는 버릇이 생겼다. 이 습관들은 쌓이고 또 쌓여서 극한의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안되려나? 한 번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는 머리속 회로로 자리를 잡고 만다. 참고로 이런 극기 정신이 완전히 자리를 잡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한다. 자칫하면 출산 2주 만에 토플을 보거나, 7개월된 아이를 키우며 대학원을 다니거나 임신한채로 10개월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조별과제에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도합 7단이 아닌데 위와 같이 따라할 경우 뼈가 많이 아플 수 있음!


도장에는 겉옷을 걸어두는 옷걸이 밑에 환자석이 있었는데, 난 그 환자석을 보며 '아파도 태권도에 와야지'라는 다짐을 하곤 했다. 감기가 심해서 학교를 결석한 날 오후, 난 평소 결심에 따라 망설임 없이 태권도장 차를 탔고 태권도장 환자석에 앉아서 환자석만의 뷰를 즐기고 있었다. 태권도 수련시간에 낯선 전화가 울렸다. 사범님께서 전화를 받더니 애매한 표정으로 날 한번 쳐다보셨다. 전화를 끊은 사범님께서 말씀하셨다.  "너 오늘 학교 안갔어?근데 도장을 왔어? 엄마가 학교 안간 애가 없어져서 찾다가 설마하는 마음에 전화하셨어"

그 날 저녁, '학교가기 직전엔 못 움직이게 아팠다가 태권도장 차 탈 시간에 아픈 곳이 저절로 나아져서 충분히 태권도는 갈 수 있었다'는 그 상황을 얼마나 열심히 설명했는지 모른다.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한번 겪어보면 딱 다 아는데.


결국 태권도 정신에 매료된 채 아파도 눈와도 비와도 더워도 추워도 태권도를 했다. 그렇게 태권도 정신으로 살다보니 오늘도 아프면 약 먹어야 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하루를 지내다가 일거리를 갖고 퇴근을 했나보다.


그래도 오늘은 환자석에 앉아있던 날처럼 침대 위에서 일하지 말아야지. 어제 아프다고 축 늘어진 날 보며 물수건 해다주고 체온을 재어준 연남매에게 심심한 감사를 보내며.

작가의 이전글 무도의 역사-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