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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이모 Jun 18. 2023

달라달라

손바닥 위 살구

이 열매는 살구다.

오늘 살구가 생겼다.


살구를 보다가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던 1990년경에는 "살색" 색연필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림속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 손, 발을 살색으로 칠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을 때, 다양한 피부색이 있음에도 저 색만 살색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비판적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그" 색은 이름이 연주황이 되었다가, 초등학생들에게 어려운 한자어 이름이라하여 살구색이 되었다.(이름의 변천사를 알려주신 연수님 땡큐)


그런데 오늘 살구라는 열매를 만나고 보니 살구색은 그 색(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색)이 아니다. 그 색은 나의 손바닥 색에 약간 비슷했는데 살구와 내 손바닥은 전혀 다른 색이다. 살구는 주황 탁구공인데 살구색은 손바닥 색으로 통용되고 있다.


어제 콘서트에서 "있지"라는 그룹이 부른 "달라달라"를 따라부르며 살구를 들고 거실로 나왔는데, 도깨비를 시청하던 연남매가 동시에 "슬퍼"라고 중얼거렸다.

지은탁양이 수능을 보고 나오며 교문을 나서는데 자신만 기다리는 엄마가 없는 장면이었다(지은탁양은 극중 만 9세 홀어머니를 여읜다). 연이어 각자 슬픈 이유를 중얼거렸다.


연욱: 엄마가...(눈물이 고였다) 보고싶나봐..

.

.

연수: 연욱아, 내일 월요일이야.



난 연욱이 말에 눈물이 고이고, 남편은 연수 말에 "그러게, 월요일이네" 한다.



어쩜 이렇게 다른가에 놀라며 언니의 부재중전화에 콜백을 했다. 언니는 나랑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 계란 흰자, 노른자 취향, 3분 카레냐, 짜장이냐 등 입맛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도 닮지 않았다. 특히 언니는 미술, 음악, 문학에 소질이 있고 난 체육, 암기, 점프 등에 소질이 있다.


어릴 적 언니가 매일 들고 다니며 쓰던 공책이 있었다. 거기에 글도 쓰고 일기도 쓰고 공부도 한다고 건너들었다. 어느 날, 자나깨나 꼭꼭 숨겨두던 그 공책을 언니가 왠일로 거실 복판에 두고 갔다. 집에 혼자 있던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페이지를 열었는데 하필 그 페이지에 소설이 시작되었다. 언니가 쓰던 그 소설 첫 두페이지가 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다 읽고 빈 페이지를 한장한장 넘겨보았다. 혹시 흰 펜으로 글씨를 쓴 건 아닌가 싶어 빛에 비춰도 보고, 우연히 그 날 펼쳐진 페이지에 글을 쓰는 건가 싶어 다른 페이지도 펼쳐보았으나-이야기의 뒷부분이 없었다.


일단 그 공책을 언니방에 고이 가져다놓았다. 아끼는 공책이 (가족)공공장소에 있었다거나 누가 만진 흔적이 있다 등의 이유로 언짢아져서 소설 뒷부분을 안쓸까봐 노심초사했다. 주인공이 그 동굴로 들어가 어디로 나올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언니가 방에 들어가면 소설 쓰는 소리가 날까 싶어 귀를 대보았다. 언니가 집을 나서면 공책을 열어보려고 했는데, 난 태권도에서 점프하면서 발차기를 차려고 집을 자꾸 나서고 언니는 집에서 나가질 않으니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소설의 끝은 어찌되었더라. 그건 언니를 인터뷰하고 정식으로 다뤄보아야겠다.

.

.

.

여름이 온다.

무더위가 온다.

우리집 냉방파들이 에어컨과 선풍기를 풀가동하는 날이 곧 올텐데.. 지금도 간절기 이불을 덥고 따뜻하다며 좋아하는 나와 연욱이는 어디서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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