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때와 출근하지 않을 때 걸음수 차이가 많게는 열배가 난다. 차를 몰고 출근해서 구내식당을 이용한날은 1,000보 남짓 걷는데, 아이랑 산책하고 같이 문방구가고 같이 떡볶이도 사먹은 날은 10,000보를 훌쩍 넘기도 한다.
그리하여 너무 걷고싶어진 나는 수영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그 여정은 험난하고도 불편했다.
7시에 시작한 수영을 7시40분에 마치고 먼저 나온다. 어제 자로 중급레인 승급에 성공한 나는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7시 20분부터 이미 운동을 마친 느낌인데, 그래도 20분을 더한다니, 칭찬한다.
샤워를 마치고 수영복을 탈수기에 돌리고 머리를 그럴듯하게 드라이하고(이게 제일 어려움) 락카키를 교환할 때까지 20분이 주어진다. 드라이를 그럴듯하게 하던 중 어차피 한창 일하다보면 집게삔으로 앞머리를 올릴 거란 생각에 롤빗질을 때려친다. 칭찬한다.
다음은 따릉이 구간. 수영장 앞 따릉이 대여소에서 지하철 입구 앞 따릉이 대여소까지 따릉이로 이동한다. 약 5분 소요가 목표다. 지하철역에 3개 호선이 교차하고 내가 탈 급행은 대여소가 있는 입구에서 가장 멀다. 따라서 따릉이를 타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지하철 역 안에서의 달리기가 줄어든다. 그러나 따릉이 구간의 복병이 있었다. 길이 약간 내리막이었다. 산들바람이 분다. 산책로도 곧잘 되어있다. 평화롭게 등교하는 학생들이 귀엽다. 기분이 삼삼해지면서 이 구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따릉이를 7분 탔다. 그래도 칭찬한다.
이제 지하철역을 뛰다 걷다 할 시간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상점가를 지나고 나서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한 다음 내가 타려는 9호선을 향해 뛰다보면 굳이 뭐하러 같은 역에 연결시켜놓은 것인가 의심이 들만큼 긴 통로를 지나고 지나고 좀 더 지난다. 계속 걷고 뛰다보니 왜 지하철을 타는가 하는 질문으로 회귀한다. 그 때 에스컬레이터 정체 구간에 들어서고 만다. 이 구간에서는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급행은 8시 15분인데 08:14:48.....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는 08:15:08이었는데 스크린도어가 닫히는게 보였다.
난 그렇게 출근의 의지를 총체적으로 상실한 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에스컬레이터 구간만 빨리 지났다면... 앞서서 천천히 내려가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따릉이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 시간은 벌써 8분이나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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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급행열차가 들어왔다. 다음 급행은 8분 후 인데 갑자기 급행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출근길 인파로 열차는 지연되었고 아까 본 그 열차는 일반열차였던 것이다! 사람을 밀고 밀리며 급행에 탔다.
열차에 타서 아까 미워한 에스컬레이터 구간 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좀 갖고, 그 다음엔 출근길에 의미를 좀 부여했다. 난 왜 지하철에 몸을 싣는가. 운동하고 싶은 직장맘으로서 난 운동시간과 출퇴근시간을 접목시키기로 한 것이다. 난 드라이능력을 향상시켰고(정확히는 빠른 포기능력이 향상되었다) 자전거를 탔으며 런닝머신을 뛰었다. 심지어 Gym 이용료도 저렴하고 기름값 절감을 따져보면 이 땀의 가치가 아주 높다.
다만, 빨기 쉬운 운동복이 아닌게 문제다.
정장인게 문제다,
노상에서 펼쳐지는 아침운동의 강도가 높기 때문에 그게 문제다.
루틴이 될 수 있으려나 매우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