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8일 월요일 편집자의 일기
[“빛은 없고 빚만…” 설 자리 잃은 ‘반지하 난쏘공’]
오늘 1면 헤드라인으로 처음 뽑은 제목이었다. 영화 ‘기생충’이 한창 흥행했을 때 모든 언론사에서 반지하 얘기를 다뤘다. 오늘 기사에선 반지하의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과 더불어 그 열악한 반지하 셋방마저도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철거민, 반사적으로 ‘난쏘공’이 생각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다가, 그냥 ‘반지하 난쏘공’이라고 불러보기로 했다. 적어도 ‘난쏘공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며 킬 당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킬 당했다. 제목을 사장한 이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가며 “1면 제목 그거 이상해, 바꿔”라는 말만 툭 던지고 나갔다. 동기 카톡방에 ‘난쏘공’이 제목에 들어가면 이해하기가 힘들지 물어봤다. 우리 세대는 학교에서 ‘난쏘공 = 철거민’으로 배워 알겠지만 부모님 세대는 오히려 모를 수도 있겠다는 답변. 빠르게 수용하고 새 제목을 고민했다. 수용은 했지만, 새 제목을 고민하는 와중이었지만 ‘난쏘공’은 이명처럼 남았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80p
온종일 ‘난쏘공’을 생각한 하루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집에 책이 있는지 찾아봤다. 다행히 본가에서 챙겨왔다. 책장을 펼쳐보니 중학교 땐지 고등학교 땐지 ‘난쏘공 수행평가 준비’라고 쪽지 시험 예상 문제를 적어놓은 메모지가 툭 떨어졌다.
1. 난장이가 의미하는 것은? ___________________ (사회적 약자)
2. 난장이의 가족에게 날아온 것은? ____________ (철거 계고장)
3. 난장이가 사는 동네의 지명은? ______________ (낙원구 행복동)
…
이런 문답이 46번까지 적혀 있었다. 그렇게 시험을 위해 읽고 덮어놨을 책. 그렇게 읽고 말았을 이야기였다. 중고등학교 필독도서를 이십 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어봤다. 읽다가 난쟁이 아버지가 서커스를 하겠다고 꼽추를 집으로 데려온 장면까지 읽고 자러 누웠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다시 일어나 울만큼 울고 난 후에야 잠이 왔다.
‘집’에 책임감을 갖게 되는 나이가 각자 다를 것이다. 나는 집을 사겠다고 찾아간 부동산에서 중개업자와 매도인, 세무사가 보는 앞에서 오열을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나를 대변한다고 느껴진다. 어쩔 땐 빛나고 당당한데 어쩔 땐 초라하고 안쓰럽다. 집이 나를 대변한다고 느껴지는 나이가 되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그때는 쪽지시험도 없을 테니 예상 문제 뽑지 말고 그저 마음을 다 해 읽어보라고 알려주는 좋은 교사 어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까지 하나의 문장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뿐이었다.
[“빛은 없고 빚만…” 반지하, 빈곤에 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