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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Aug 02. 2020

태릉골프장과 거기에 지울 한 줌도 안되는 아파트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421&aid=0004790387


  이 태릉 골프장은 당연한 얘기지만 서울의 북동쪽 경계인 남양주시에 있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가면 서울 광화문에서 30분에도 갈 수 있는 거리다. 일산 대장지구 정도의 접근성은 있는 그래도 그 자체로는 괜찮은 서울 인접 택지후보이긴 하다. 


  이 바로 옆에 육사가 있고 그 건너편에 군부대가 있었다. 71사단...난 여기서 근무했는데, 물론 방위병이었다. 방위병치고는 전방(?)이어서 그때만 해도 집에서 가는데만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1시간 반이 걸렸다. 잠깐 보병연대있다가 바로 사단장 비서실로 가긴 했는데 그덕에 매일 아침 6시까지 출근이라 생활여건은 더 악화됐었다. 행사가 있으면 퇴근도 늦어져 아예 현역병들 막사에서 그냥 자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럴때마다 일직사령에게 혼났던 기억도 난다...암튼 그시절 나의 주임무는 걸레 2장만 갖고 드넓은 사단장실 청소하기와 하루에 커피 2백잔타고 다 씻기 등이었고 부임무로 휴가가는 현역당번병들 대신 훈련참석하기로여서 사격과 전투력측정 심지어 비서실 대표로 유격과 혹한기가기 등이었다. ...그때는 그런 육체적일들이 힘들었는데, 전역하고나선 그 군생활이 남긴 기억이 남긴 정신적 여운이 아주 길게도 계속 반복해서 씁쓸하게 되풀이됐다.


  가장 추억(?)이 컸던 건 캐디일이었다. 당시 사단장과 연대장들을 위해서 사단 배밭옆에 골프장연습장을 만들었다. 사단배밭도 요상한 건데 암튼 우린 거의 전군 지휘관에 몇상자씩 보내고도 남는 배농사를 짓는 배밭이 있었고 그곳을 관리하며 농사짓는 2개소대규모의 부대가 있었다. 배밭관리를 하는데 부대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물론 국방부가 이들을 배농사지으라고 군대로 부른 건 아니지만 결국 그당시엔 이렇게들 됐다. 뭐 지금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배밭 초입에 티샷을 마구 날려도 걱정없는 대형 골프연습장을 공병대 등이 동원돼 지었다. 그리고 나서 사단장과 대령들은 열심히 티샷을 연습했는데 결국 바로 옆 태릉골프장에서 멋진 샷을 날리기 위한 준비를 위해 군의 부지와 군병력이 희생된 것이다. 어쨌건 사단장님은 사단장 나름대로 대령들보다 나은 폼을 보여주기 위해서...대령들은 서로 진급을 경쟁하는 그렇잖아도 껄적지근 관계속에서 서로의 폼을 품평하고 더러 "아이고 부사단장님은 샷이 아니라 춤을 추시나? 허리를 어울렁 더울렁하면서..." 이렇게 모멸감을 주고 까는 경쟁의 무기로 정말 열심히들 연습을 하셨더랬다.

 

  정식으론 비서실의 문서담당 행정병이었기에 정식당번병들보다는 덜했지만 가끔은 나도 부사단장이나 참모장의 골프백을 메고 연습장으로 가야했다. 그래서 아이언을 꺼내고는 그 다음일은 그 영감(대령이나 부사단장을 그리 불렀다)님이 치기 좋게 공을 한개씩 놓는 일이었다. 인간 골배급기계였던 것이다. 근데 나름 열심히 공을 놓긴 했으나 영감님들은 "너는 다른 일하고 이건 내 당번병에게 도로 맡겨야겠다"고 하셨는데...골프를 전혀 모르는 나는 오비가 나도 "굿샷", 슬라이스가 나도 "굿샷"을 심드렁하게 외쳤기 때문에 이 일에선 선호를 받지 못했다. 물론 이 캐디일의 가장 힘든 부분인 사방팔방에 떨어진 공 줍기는 운전병의 몫이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감님들이 고대하며 준비에 열 올리던 태릉골프장 행차는 한달에 한번꼴은 됐던 것 같다. 매주 수요일마다 사단 테니스장에서 하는 테니스와 사우나에 비하면 한달이상 기다려야하는 '행사'였던 것인데, 암튼 그날 하루는 사단의 지휘계통 거의 전부가 필드위로 이동하시던 것이었다. 

  

  전역한 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로 계속 세월은 가고 나의 의식도 변했지만 그때의 기억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그 기억을 다시 돌이킬때마다 같이 따라오는 감상은 점점 써져가는 것 같다. 군 고급지휘관들의 '골프 체력단련'을 위해 얼마나 많은 군의 인적자원과 돈과 그리고 귀중한 시간이 소대단위로 중대단위로 연대단위로 투입돼야하는 건지...

  그리고 이렇게 체력단련해 가며 지켜온 군의 큰 귀중한 자존심과, 그에 비해  1만세대 정도의 한줌(?)도 안되는 택지 조성의 가치가 어느쪽이 더 높냐는 나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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