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토 : 토목업계를 탈퇴하는 것. 흔히 업종변경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
첫 출근 이후 한동안은 6시 정각에 퇴근했다. 설계업에서 칼퇴란 그때 당시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그건 알 수 없었다. 소수만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그 얘기를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신입인 나에게 맞춰 다들 정각에 퇴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근시간이 보장되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적응 기간이었던 한 달 이후 그때부턴 정시에 퇴근하는 일보단 퇴근 30분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얼마 뒤 새로운 부장이 입사했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 부장이 내가 탈토를 결심하게 된 이유가 될 줄은.
당시 내 통근 거리는 용인에서 안양, 당시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지 않은 곳이라 편도만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해가 뜨기 전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나서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내가 타는 정류장은 종점과 가까운 곳이어서 언제나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정류장을 하나씩 지나면서 버스는 출근하는 사람으로 가득 찼고 환승센터인 수원역에 도착하면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하철로 환승 후 사무실까지는 아홉 정류장. 지하철역에서 내려 10여분 정도 걸으면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별이 가득했던 거리는 어느새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 되어있었다. 퇴근까지 포함하면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이동하는데 소요하는 것이었다.
이런 생활에 가끔 활력소가 되었던 것은 일찍 집에 가서 쉬거나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새로 입사한 부장님의 한마디가 이 활력소마저 없애버렸다.
“평일엔 약속 잡지마.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당시에도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었지만 반기를 들 수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던 나는 그 이후 회사 일에 매진했다. 물론 막차 시간까지 야근이라는 건 덤. 저녁 6시만 되면 저녁 먹자는 이야기가 당연해지고, 집에 가지 않던 부장님 덕분에 덩달아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아침 6시에 출근길에 오르고 집에 들어오면 12시가 넘었던 그 날들 동안 집은 그냥 잠만 자는 곳이었다. 주말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평일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느라 종일 잠만 자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패기 넘치던 신입이었지만 이런 나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패기는 어느덧 피로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연봉이 높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친구들이 연락해 올 때마다 ‘야근 중, 일하고 있어.’라는 말이 일상이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선 돈 많이 번다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나오기 시작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한 달 실수령액은 138만원, 시급으로 따지면 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1일 8시간, 5일 근무일 경우) 야근수당은 적게나마 챙겨줬지만, 어느 순간부턴 회사가 어렵다고 없애버려 월급만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순 없었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업계에 대한 현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박봉에 고된 근무시간은 업계 전반적으로 굳어진 분위기였다. 야근은 일상이요, 칼퇴는 현실에 없는 이야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고 젊은 사람들이 고민 글을 올리면 미래가 없으니 탈토하라는 분위기가 전반적이었다. 당시 주위에 취업한 친구도 없었고 조언을 구할만한 상대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오늘부로 탈토한다!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