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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콩 Dec 23. 2023

다시 토목회사로 돌아가다

"탈토 할 거야!!"라는 다짐과 함께 회사를 그만둔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설계사를 그만둘 무렵 전공과 관련된 선배의 회사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하는 연락을 받았던 참이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의 회사라 연봉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온 데이터를 확인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라 출장도 없고 업무시간에 집중해서 하면 크게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개인시간이 전혀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던 차에 내 귀에 들려온 이직 제안은 솔깃했다.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다는 생각에 면접을 보고 바로 이직을 했다. 별을 보고 출퇴근하던 일상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지게 되자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특히 여름에는 해가 길어 6시에 퇴근할 땐 낮에 퇴근하는 기분이 들어 설렘과 행복이 가득한 상태로 퇴근길에 올랐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회사에 익숙해져 갈 때쯤 내 손엔 회사 카드와 통장이 들려져 있었다. 무려 경리업무와 회계는 전혀 모르고 재무제표의 개념조차 없던 나에게 말이다. 어찌 된 영문 인가 하니 대부분의 직원들이 현장출장이 많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식대와 사무실 비품구입은 회사 카드로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소규모 개인회사였다.) 뭣도 모르는 막내직원이던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그 상황에 익숙해졌을 무렵, 어느 날 우연히 통장정리를 하게 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통장에 잔고가 줄어들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감은 점점 커졌지만 사장님도, 다른 직원들도 별 말이 없길래 기우라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왜냐고? 불안하긴 해도 월급날 내 통장엔 입금내역이 찍혔고, 직원에게 준 통장에 돈이 없다고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분들껜 죄송하지만 사실 이때 도망갔어야 했다.

어느 월급날,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핸드폰이 잠잠했다. 

'오늘 월급날 아닌가? 왜 돈이 안 들어오지?'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다는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는 찰나에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오늘 중엔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월급이 들어온 걸 확인한 뒤, 그럼 그렇지, 뭔가 착오가 있었구나 하며 다시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또다시 월급날 내 통장의 잔고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또 왜???'

이번엔 옆에 있는 부장님에게 여쭤보았다. 혹시 월급 들어왔냐고. 들어오진 않았는데 가끔 늦는 경우가 있다는 부장님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이땐 도망쳤어야 했다.

그래도 선배니까, 월급이 밀리더라도 줄 거라고 믿었다. 정말 철딱서니 없는 믿음이었다.


다음 급여일, 역시나 월급은 다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가 어려워서 일부만 지급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월급이 두 달 동안 제때, 그것도 제 금액이 들어오질 않으니 생활비가 없어졌다. 월세, 생활비, 교통비, 각종 공과금까지 내고 나면 빠듯했던 월급이었는데 그 마저도 구멍이 나버려 결국 조금씩 모아두던 적금과 청약을 깨서 생활하기에 이르렀다.


밀린 월급을 달라고 이야기를 해도, 그때뿐 우야무야 넘어가기 일쑤였고 참다못한 나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고용노동부에서는 만 3개월 이상 회사에서 받은 돈이 한 푼도 없어야 임금체불로 신고가 가능하다고 했고, 월급의 일부가 들어온 나의 경우 신고를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사표를 냈고 도망치듯 그 회사를 그만뒀다. 

월급? 물론, 집요한 연락을 취한 끝에 다 받았다. 




소개로 부랴부랴 갔던 회사에서 호되게 당한 뒤로 차근차근 준비해서 재취업하자는 생각에 집 근처 알바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편의점? 카페? 식당? 계속 알아보던 차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 지원했다. 지금은 순환운동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정기간 교육을 받고 테스트를 통과하면 일을 할 수 있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처음 접해보는 분야의 일이었기에 해보기로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처음에는 회원분들과 낯을 가리고 소심하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차츰 적응해 가며 성격도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뭔가 하는 걸 되게 좋아하네?'


그러면서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하는 아침이 즐거웠고 일하는 내내 즐거웠다. 전공이 아닌 터라 운동을 하며 몸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 또한 즐겁게 해나가고 있었다.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좋았고, 그로 인해 좋은 방향으로 몸이 변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회원들이 살이 빠졌다고, 통증이 사라졌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는지, 그 상황에 만족하며 생활한 지 1년이 다 되었을 무렵 일에 대한 알 수 없는 허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 일이 좋지만 오래 할 순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채워지지 않던 성취감이 문제였다.


긴 출퇴근 시간과 밥먹듯이 했던 야근으로 인해 내 개인생활이 없어져서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성취감이었다. 설계를 할 땐 프로젝트를 하나 끝냈을 때 나오던 성과물을 보면서 뿌듯했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를 하면서 그런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았다. 분명 즐겁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삶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커졌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다시 그 뿌듯했던 기분을 느끼고 싶어졌다. 


결국 과감히 외쳤던 탈토를 철회하고 약 2년만에 다시 토목설계의 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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