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내가 생각했던 회사의 모습은 남녀의 비율이 비슷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밝은 사무실이었다. 대학을 다닐 때도 내가 다니던 학과는 남녀의 비율이 비슷했기에 당연히 그런 분위기의 회사를 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번째 회사도, 이직한 회사도 그 상상은 무참히 깨졌다. 첫 번째 회사는 인원이 적어 그랬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직한 회사는 삼십여 명이 근무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출근 첫날 각 부서별로 돌며 인사를 할 때 알았다. 여자가 적다는 것을.
회사에 근무하는 부서는 크게 관리부서와 기술부서로 나눠진다. 세 곳의 설계사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하는 동안 기술부서에서 근무하는 여자분은 나 포함 넷이 전부였다. 그것도 나보다 경력이 많은 분은 없었다. 여자가 워낙 없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결혼하면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더더욱 사람이 없었다.
한 번은 옆 부서 임원분께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처음 출근했을 때 정말 놀랐다고, 20년 이상 일을 하면서 여자 기술직은 처음 봤다고 하셨다. 심지어 직급을 가지고 있는 직원은 처음이라고 얘길 하셨다. 그래서 내가 처음에 출근했을 때 신기하게 봤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다른 회사에서 임원으로 근무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미혼이면서 성격이 엄청 강한 여자분이라 다른 남자들에게 기죽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성격이 아니면 버티지 못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임, 회식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언제나 눈에 띄었기에 그런 자리를 나가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여자’라서 그렇다는 인식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회식은 끝까지 참석하려 했고, 어떠한 말을 들어도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힘을 키워나갔다. 기분이 나쁜 농담을 들어도 웃으며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치는 능력, 그리고 부서에 좋고 나쁜 일이 있을 때 술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발렌타인 데이, 빼빼로 데이 같은 이벤트성이 있는 날이면 조그만 간식이라도 챙겼다. 상술이라고는 하지만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성격이 드센 여자라서 버티는 게 아니라 같이 고생하는 동료이기에 오랜 기간 일하며 함께 한다는 생각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직도 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