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NOWLEDGE & HUMAN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들
올해는 '교양 철학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리딩리딩이 책을 구분하는 기준인 8개 카테고리 중
<KNOWLEDGE & HUMAN>은 주로
인문 교양 관련 책들을 소개해왔는데요.
2021년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책*은
에릭 와이너의 쉽게 풀어쓴 철학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였습니다. (*페이지뷰 기준)
이외에도
디지털 시대의 노동과 가난을 다룬 책
김만권의 <새로운 가난이 온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많은 관심을 반영,
올해의 책으로 꼽혔습니다.
올해를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을
리딩리딩의 KNOWLEDGE & HUMAN 카테고리 추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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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책.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은 세상에 흔치 않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Eric Weiner)는 기자 출신의 유쾌한 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그가 펴낸 책들은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을 받으며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번역을 하신 김하현 선생님께서 위트 있는 문장들을 솜씨 있게 옮겨주신 덕분에 멈칫거리지 않고 깔깔 웃을 수 있었다.
우선 목차에 홀렸다. 책은 새벽, 정오, 황혼의 3부로 나누어지는데, ‘새벽’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이며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등이, ‘정오’에는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황혼’에는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몽테뉴처럼 죽는 법 같은 게 들어있다. 이렇게 핵심을 찌르면서도 유쾌한 목차라면, 이 사람에게 그 깜깜하기로 악명 높은 철학의 숲길 안내를 맡겨도 좋을 거라는 직감이 든다. (그 직감은 맞았다.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끼얹어진 유머가 얼마나 뇌세포와 안면근육을 동시에 저격하던지, 나는 불이 들어오는 전구처럼 뇌를 반짝이는 동시에 내 허파를 스코틀랜드 백파이프처럼 연주하며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직접 고른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좇아 그들이 실제로 살았던 곳이나 그들의 철학이 의미를 가지는 장소들을 하나씩 돌아본다. 주로 기차를 타고. 그래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기차는 우리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속도로 달리며, 약간은 시대에 뒤떨어진 퀴퀴한 느낌이 있다는 점에서 철학과 잘 어울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그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우리를 태워 그리스 아테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인도의 델리, 일본 교토,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미국의 와이오밍과 월든, 프랑스 파리 등지를 돌아다닌다.
전공자의 눈으로 봤을 땐 사실 이 책이 생각만큼 철학을 많이 다루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소크라테스 챕터의 밸런스가 무척 좋았는데, 다른 철학자들에게선 그들의 철학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철학자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학술서적을 의도한 게 아닌 이상 이런 느슨함이 오히려 장점이겠다.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거나 철학자라는 종족에게 애정을 갖게 하기엔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다. 독자들은 그동안 좀 어려웠거나 꼴 보기 싫었던 철학자들이 굉장히 사랑스러워지거나 만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는 아마 최애 철학자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심심할 때 카톡 보내고 싶은 철학자, 같이 술 마시고 싶은 철학자, 길을 잃는 순간 멘토로 소환하고 싶은 철학자. 프로듀스 101에서처럼, 책을 다 읽고 나서 당신의 철학자에게 투표하셔도 좋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에 흄이 등장하여 존재와 당위를 논한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지만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편안한 이불 속에서 발버둥치며 세상과 타인, 사명과 의무에 대한 배꼽 빠지는 성찰을 이어간다. 질문왕 소크라테스를 데려와서는 철학의 본질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더 이상 질문을 오래 품으며 살지 않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여기엔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다”라는 피터 크리프트의 말이 덧붙여진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전혀 진보하지 않은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루소의 철학을 바라보고, 쇼펜하우어와 함께 귀를 쫑긋 세우고 세상의 말과 음악을 들으며 고통을 유예할 수 있는 그런 순간들과 영역을 살핀다. 에피쿠로스를 만나 온갖 불필요한 ‘텅 빈 욕망’ 더미 위에 쌓여 있는 우리의 소비문화를 돌아본다거나, 결과 중심적인 오늘날의 세상에서 오로지 과정에 100퍼센트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며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사람은 스스로를 집어삼킨다”고 했던 간디의 말을 떠올려 보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노인 행동주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보부아르를 보면서 어떻게 늙어야 할지, 세상사에 남달리 무능했던 몽테뉴와 어깨동무를 하고 죽음에 어떻게 맞설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해지는 현대 사회에 ‘관심의 철학자’ 시몬 베유를 소개한 것도, 일본의 궁녀였던 세이 쇼나곤을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철학자로 담은 것도 좋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철학자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철학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으로 썼다. 철학자들의 신체 특징이며 생활습관 같은 것을 이 정도로 상세하게 모아놓은 책도 드물지 싶다. 그만큼 철학적 사고는 정신 뿐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가만히 앉아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에 방점을 찍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굉장히 실용적으로 바라보고, 실제 우리 삶 속에 철학이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지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철학을 ‘읽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아닌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사실 철학은 지식체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인데,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철학을 가르치지 않고 철학에 ‘대해’ 가르친다는 지적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다만 한 가지, 에릭 와이너도 홉스를 오해하고 있다. 공자의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에릭 와이어는 홉스를 성악설, 루소를 성선설에 가까운 예로 들고 있는데 홉스의 인간은 원래 그렇게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며 루소의 인간도 원래 그렇게 선한 인간은 아니다. 홉스의 인간은 똑똑하고 불안한 인간이고, 루소의 인간은 백지에 가까울 뿐이다. 루소보다는 로크 쪽이 오히려 성선설에 가깝다. (그리고 크게 중요한 점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가 아흔아홉까지 살았다는 서술 역시 오류인 듯하다. 일흔에 법정에 서서 사형선고를 받고 일흔하나에 죽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글을 맺으며, 우리에게 인생 사용법을 설명해 주는 이 열네 명의 철학자들을 고른 기준을 되짚어보면 어떨까.
저자는 “이 사상가들이 지혜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전염성이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열넷의 사상가를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추려진 사상가들은 저마다 품었던 질문과 저마다 찾은 답으로 우리에게 다채로운 지혜를 전한다.
“우리에겐 늘 지혜가 필요하지만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열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과 서른다섯 살, 또는 일흔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은 같지 않다. 철학은 각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젊은 날에는 루소의 반짝이는 눈과 니체의 패기가 좋았고, 박사공부를 할 때는 한때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공자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좀 더 귀를 열고 감탄했었다. 지금도 나는 끊임없이, 인류 역사상 똑똑하기로 손꼽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에서 인생 사용법의 팁을 얻고 부족한 지혜를 보충받는다. 뭐야, 철학이 이렇게 매력적인 거였어? 이렇게 반문하며 철학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사랑의 불쏘시개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책이다.
Written By Jinmin Lee(이진민/ KNOWLEDGE & HUMAN 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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