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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London Jan 28. 2022

[BOOK]오로지 문장이 나를 위로할 때(2)

기분따라 북 큐레이션 by 리딩리딩



좋은 문장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요.


복잡한 생각들은 내려놓게 만들고,

저 멀리 나를 데려가주는 것 같은 책들. 


문장이 나를 위로할 때는 언제인가요? 

리딩리딩의 두번째 추천책들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큐레이터 서평으로 연결됩니다.








1)연년세세(황정은 지음, 창비(출판사))




성장하면서 알아가는 가족의 비밀이 있다. 대단한 비밀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별볼일 없어 비밀이 된 일도 많다. 때로는 한 사람만 참으면 다른 가족들에게는 비밀도 뭣도 아닌 것으로 남는 시간도 있다. 명절에 다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사가 남자들의 성이 대대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족보니, 집안이니 하는 형태를 한다면, 치매에 걸린 할머니나 병원에 누운 어머니의 열에 들뜬 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아들 기죽일까봐 하지 않던 말을 딸에게는 시시콜콜 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를 듣고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을 돕기로 결심하는 ‘살림밑천’ 소리를 듣는 장녀들은 한국에 드물지 않다.


<연년세세>의 ‘작가의 말’에 적힌, “사는 동안 순자,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자주 만났다.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를 읽고, 엇비슷한 여자 이름들이 떠올랐다. 순자. 영부인 이름 중에도 순자가 있지 않았던가. 참고로 황정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연작소설집 <연년세세> 중 <무명>은 1946년생 순자씨의 피란 이야기를 듣고 썼다. 하지만 무용담이 되지 못한 이 개인사는 “이야기가 전부 끊어져 있다”.


<연년세세>는 서로 연결되는 네 편의 소설로 되어 있다. 어렸을 적 ‘순자’라고 불렸던 이순일과 두 딸의 이야기가 네 편을 잇는 큰 줄기라면, 각각의 소설을 독립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인 <파묘>는 이순일이 차녀 한세진과 함께 철원군에 있는 외조부의 묘를 없애는 이야기다. <하고 싶은 말>은 장녀 한영진의 이야기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백화점 판매원으로서의 삶을 담았다. <무명>에서는 어린 시절 순자라고 불리던 이순일이 직접 피란과 그로 인한 어려움, 그리고 친구 순자와 얽힌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순일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져 고되게 일을 하며 성장했다. 순일은 고모네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다 친구 순자의 도움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이야기 중심 인물은 시나리오 작가인 한세진. 한세진은 북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뉴욕을 방문하며 이순일의 이모 윤부경의 아들 노먼을 만나게 된다. 황정은 작가가 성을 이름에 꼬박꼬박 붙여 부르기 때문에 이순일과 한씨 일가 이야기처럼도 읽힌다.


<파묘>에서 그들의 상황이 원경으로 그려진다면, <하고 싶은 말>에서는 영진의 입장에서 삶의 고난이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떻게 다가오는지 묘사된다. 한영진은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한다. 남편 김원상은 아내를 특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인물은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을 묵묵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한영진의 부모인 한중언과 이순일을 아랫집으로 들이기 위해 그 집에 살던 세입자를 내보내야 했을 때, 부족한 돈 절반은 묵묵히 김원상이 마련했다.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이순일이 오름 위에서 풍경을 조망하도록 등을 내민 사람도 김원상이었다. 이 대목에서 김원상에 대해 이순일이 생각하는 부분은, 장녀로 가족을 늘 배려하며 살아온 이순일 자신에 대한 평가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었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연년세세> 중


세 번째 장에서는 이순일이라는 이름도 순자라는 이름도 나오지만 그 시대를 어렵게 헤쳐나온 수많은 이들의 삶이 겹쳐, ‘무명’이라는 제목이 된다. 


이 즈음부터 <연년세세>는 요약하기가 점점 불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가? 혹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긴 세월 속에 존재한, 해가 가고 세월이 쌓이는 동안 안간힘을 써서 존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를 앞세우기 어렵다.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연년세세>의 사람들은 끝내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삼킨 말들이 삶이 되고 소설이 되면, 그걸 세상으로 끄집어내 다시 살게 하는 일은 독자들이 하는 법이다.




Written By Dahyeh Lee(STORY & CLASSIC 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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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지음, 열림원(출판사))







처음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내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이가 없어서.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서. 그때 나는 나랑 동갑인 사람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26살밖에 안된 이 작가가 보여주는 그 섬세하고도 광활한, 발랄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세계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랑 동갑이라고? 26살이라고? 그런데 이런 글을 쓴다고? 그러니 김애란 작가가 15년만에 처음 펴낸 이 산문집을 나는 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이 속에 작가의 비밀 한 자락이 녹아있을 수도 있으니.



아는 이야기를 다 쓰면 그다음엔 어떤 글을 지어야 하나 근심한 적이 있다. 바보같이 몸도 글도 한결 같을 거라 생각하던 때의 일이다. 단어 하나가 몸을 완전히 통과한 후에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는 걸 몰랐다. -<잊기 좋은 이름> 중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작가의 몸을 통과한 어릴 적 풍경, 문학의 열망에 휩싸였던 대학시절들 등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작가 김애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약간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 내용이랄까? 개인적으로는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이라는 소설을 특히 편애하는데, 이 책에서는 20년 넘게 ‘맛나당’이라는 손칼국수집을 했던 어머니와 그 추억들에 대한 에세이도 실려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2부는 김애란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들에 대해 쓴 글들로 채워져있다. 김연수 작가, 편혜영 작가, 조연호 시인, 윤성희 작가 등이 등장한다. 그런데 김애란 작가가 어찌나 이들을 애정하는지, 단어 사이로, 문장 사이로, 문단 사이로 그 애정이 숨겨지지 않고 줄줄 흘러나온다. 마치 잘 익은 과일에서 과즙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애정이 농익어 잘 익은 농담까지 촘촘히 새어나온다. 덕분에 김애란이란 작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독자들은 알아차릴 수밖에 없고.


3부에서는 문학에 관한 글과 그리고, 세월호가 있다. 어떻게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한 순간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매순간 분노로 우리를 몰아가는, 아픔의 바다에 밀어넣는 세월호가 있다.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공책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 뜨겁지 않게 이 글을 마칠 수 있을까.-<잊기 좋은 이름> 중


하지만 이런 설명은 이 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수많은 장면들이, 사건들이, 사람들이, 단어들이 김애란이란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광활한 세계에 대해 또렷한 언어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광활한 기쁨의 영역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또렷한 언어’라는 나의 표현도 그녀의 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문학에 대해 말을 할 때, 그때의 언어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물론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이 되어주는 그런 언어들이다. 그녀가 다른 작가들에 대해 말을 할 때, 그때의 언어는 따스한 온기가 퍼져나가며 입꼬리를 슬며시 밀어올리는 그런 언어들이다. 


특히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부사 예찬이었다. 이건 스티븐 킹의 그 유명한 부사 혐오 명언,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라는 말에 대한 정면 승부였는데, 이 글에 나오는 문장과 표현과 섬세함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몇 번이고 이 글을 다시 읽어내려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녀도 나도 좋아하는 부사를 써서 표현을 해보자면, 나는 김애란 작가를 ‘꽤’ 좋아하며, 실은 ‘아주’ 좋아한다. 15년 전에는 거의 질투에 가까운 감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작가를,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매우, 절대, 제일, 가장,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좀 더 그 모든 부사에 더 진심을 담아서 김애란 작가에 대한 애정을 말하게 되었다. 아마 오래도록 이 책을 곁에 두며 펼쳐보고 또 펼쳐 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Written By Mincheol Kim(TASTE CURATOR)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TASTE 큐레이터 김민철 작가의 리뷰와 리딩맵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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