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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don Mum Jan 17. 2022

[BOOK]오로지 문장이 나를 위로할 때(1)

기분따라 북 큐레이션 by 리딩리딩

20. 2021

좋은 문장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요.


복잡한 생각들은 내려놓게 만들고,

저 멀리 나를 데려가주는 것 같은 책들. 


오로지 문장이 나를 위로할 때는 언제인가요?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큐레이터 서평으로 연결됩니다.








1)다시, 올리브(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출판사))




“당신을 바라보던 아내분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하던데요. 어찌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던지 감동적이었어요.” 
잭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 말이 조금 석연치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여러 해가 지나-언쟁을 하던 중 잭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벳시는 
“나는 그때 당신이 죽기를 바라고 있었어”하고 말했다.
아내의 솔직한 대답에 그는 깜짝 놀랐다.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그가 기억하기로, 그렇게 물어볼 때 그는 경악해서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그녀는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그랬다면 나한테는 여러모로 훨씬 쉬웠을 텐데.”
그러니 그게 진실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다시, 올리브>


 

<다시, 올리브>. 잭이라는 일흔 네 살의 남자가 등장한다. 한때 대학 교수였다는 잭은 나이들어 사람들의 시야 밖으로 밀려난 데 대해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시간이 많다. 과거를 몇 번이고 되새김질할.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잭은 떠난 아내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낀다. 자신이 했던 외도에 대해서도 떠올린다. 아내는 죽어가며 말했다.


“당신이 미운 이유는, 나는 죽고 당신은 산다는 거야.” 


그 말이 힌트가 될 법도 했지만, 잭은 자신이 가족에게 더 충실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불쾌할 정도의 자족적인 태도가 있다. ‘내려다보는 태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큰 수술을 받은 뒤 깨어났을 때 아내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에 대해 간직해왔던 이야기는 아내 입으로 들었을 때 완전한 반전이 일어났다. 아내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 극과 극의 감정이 구분되지 않았던 셈이다. 잭 자신에게도. 올리브는 잭의 이야기에서 그가 잠깐 만났던 여자로 언급된다. 다시 만나고 싶은데, 올리브는 어쩐지 냉담하게 떠나버렸고 연락을 끊어버렸다. “당신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잭 케니슨.” 올리브의 말을 떠올리며 잭은 편지를 쓴다.


<다시, 올리브>는 2009년 퓰리처상을 받은 <올리브 키터리지>의 후속작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를 주인공으로, 미국의 한 작은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집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품이었다. <다시, 올리브>는 11년만에 출간된 후속작답게 올리브가 칠십대 중반에서 팔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십여 년에 걸친 말년의 인생을 다룬다.


‘단속’이라는 첫 번째 챕터에서 올리브는 잭의 이야기 속에서 작은 비중으로 언급될 뿐이다. 바로 이어지는 ‘분만’이라는 챕터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이틀 전 올리브 키터리지는 아기를 받았다.” 때로 주인공으로, 때로 스치는 인물로 올리브가 다시 한 권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어느 날 카페에 앉아 있다가, 나이든 올리브가 차를 몰고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올리브가 돌아왔다고, 올리브의 다음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과장된 수사처럼 들린다는 건 알지만, <올리브 키터리지>는 읽은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소설이었다. <다시, 올리브> 역시 그런 작품이 될 것이다. 올리브가 누구나 사랑할 법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올리브는, 오히려 무뚝뚝한 사람이고 퉁명스럽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든 올리브를 연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창작물에 노인이 등장할 때 흔히 동정이든 연민이든 혐오든 하나의 강력한 감정만을 느끼도록 조형되는 경향이 있음을 떠올려보라.) ‘할머니’는 대체로 주인공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올리브는 퇴장하지 않는다. 모든 나이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삶을 계속해나간다. 쇠락한 육신에도 해진 마음에도 사랑이 깃들고, 세상의 아름다움은 매번 올리브를 감사하게 한다.


<다시, 올리브>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생생하다’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의 삶은 예측가능하고 뻔한, 그래서 자극이 없이 흘러가는 잉여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에게 <다시, 올리브>는 젊었던 당신이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던 나날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고 들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작지만 온 방 안을 환하게 비출 수 있던 촛불이 다 타서 서서히 꺼지듯 이야기의 마지막 순간으로 향한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마지막 페이지들을 읽는다. 고요한 밤과 어울리는 독서다.




Written By Dahyeh Lee(STORY & CLASSIC CURATOR)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STORY & CLASSIC 큐레이터 이다혜 작가의 리뷰와 리딩맵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2)스토너(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RHK(출판사))







결말이 궁금해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소설이 있다. 숨길 건 숨겨 가며, 약간의 단서들도 살짝 흘리며. 하지만 스토너는 결코 그런 소설이 아니다. 아예 소설 시작에 결말을 알려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은 이렇게 끝났다고. 위대한 부분이나 오래 기억하고 싶은 구석 없이, 그냥 평범한 우리처럼 그냥 이렇게.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토너> 본문 내용 중


생의 끝이 이런데 생의 시작이라고 별다를 리 없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조금 더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싶어 대학에 보내진 것 뿐이다. 하지만 평범한 문학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글을 읽는 순간,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글에 감응하는 순간, 좀 더 크게 해석하자면 문학의 품에 안기는 순간, 스토너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독자인 우리는 바로 그 순간, 이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마치 스토너가 문학의 마력에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박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스토너> 본문 내용 중


섣부른 확신일지는 모르겠다. 이상한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책 리뷰 서비스를 매달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용하는 당신이라면, 그러니까 책을 보통 사람 이상으로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적어도 책의 세계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욕망이 있는 당신이라면, 아마도 스토너의 이런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장 하나에 심장이 뛰어서 책을 덮어버린다거나, 자신도 모르게 쏟아져나오는 눈물에 당황했던 순간이 당신에게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해할 것이다. 알아버린 이상, 알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스토너는 대학을 졸업하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을거라 생각한 부모의 기대는 저버리게 된다.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평생을 문학에 투신하게 된다.



그 이후의 삶은 그 순간처럼 빛나진 않는다. 문학의 반짝이는 별이 스토너의 머리 위에만 내내 떠있을리도 없으니. 잠깐 나타났다가 희미하게 보이는 문학의 빛 아래, 스토너는 전쟁으로 동료를 잃기도 하고, 또 다른 동료와는 알력 다툼이 있기도 하고, 단숨에 한 여인에게 빠져들기도 하고, 무턱대고 그녀에게 청혼을 해버리기도 한다. 그녀와는 내내 얼음장같은 관계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지만.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 스토너의 일상도 대단치 않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물론 빛나는 순간은 아주 가끔 스토너를 찾아오기도 한다. 뛰어난 기지로 상대를 제압하는 순간도, 부드러운 사랑의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너의 일상은 평범하다. 대단한 성공도 없고, 출세의 기쁨같은 것도 없다. 


언뜻보면 평범한 이 소설에 수많은 평론가들이, 작가들이, 찬사를 바친 것은, 아니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니라 소설 시작과 끝을 막고 있는 문학적 전류의 순간들 때문일 것이다. 처음 스토너가 문학의 길로 들어설 때와 결국 죽음 앞에 섰을 때 오롯이 전해지는 문학의 순간들.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감각, 열정의 모양, 빛의 무게와 시간의 중력을 알아챌 수밖에 없는 순간들. 보통의 사람도 비범하게 만들어주는 바로 그런 순간이 스토너에게는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평범한' 스토너는 ‘하나 뿐인’ 스토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발표되었다가 1년도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잊혀진 소설, 스토너. 50년 후 영국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잊혀지지 않을 빛이 된 소설. 책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번 달 꼭 권하고 싶은 소설이 있다면 바로 ‘스토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스토너> 본문 내용 중



Written By Mincheol Kim(TASTE CURATOR)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TASTE 큐레이터 김민철 작가의 리뷰와 리딩맵을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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