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순간포착
나는 한 번쯤은 누군가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으면 참 좋겠다. 이왕이면 그 대상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면 더 좋을 거 같다. 그분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나의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은 이 옹졸함'과 비교해서 통렬하게 반성한 후,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레벨업을 좀 하고 싶다. 운동에서는 프로선수와 실업선수 그리고 생활체육인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등급이 있다고 확신한다. 나의 성품 등급을 운동선수 기준으로 매긴다면, 아마도 취미 생활하는 초보 생활체육인 수준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운동은 눈으로 대충 봐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고 어깨너머로라도 배울 수 있는데 반해, 마음은 아무리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 실력이 보이지 않아서 따라 하기가 쉽지 않으니 참 통탄할 노릇이다.
나의 옹졸함은 때때로 나도 모르게 겉으로 드러나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 어딘가에서 불쑥 치고 올라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숨어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개과천선했다고 하는데 나 또한 드물게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깨달음 혹은 반성의 조각들이 하나씩 늘어나게 된다면 좀 더 내가 사람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된다. 최근 나에게 좀 더 사람다워지는 깨달음이 있어서 소개할까 한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가까워지면 새벽은 여전히 어두운 상태이고, 냉동실에 갇혀있던 찬 공기가 문을 열자마자 탈출하여 얼굴에 부딪히는 것처럼 쌀쌀하게 피부에 와닿는다. 용역에 투입되는 인부들은 새벽이면 작업장으로 출근한다. 이들은 작업을 하기 전에 사옥 1층으로 몰려들어 화장실을 점령하거나 휴게실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1층은 대혼잡 상태가 된다. 타일이 깔려 반짝이는 로비를 작업화로 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바닥은 흙투성이가 된다. 화장실은 이용 불가 상태가 될 정도로 만원이 되고 바닥은 흙탕물 바다가 되어 버린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슬쩍 눈치 보며 가져가는 종이컵과 믹스커피... 불쾌해서 기분이 꽤 상하기도 했다. 단정하지 못 한 복장과 작업화, 덥수룩한 수염과 눌러쓴 모자 그리고 아무 데나 뱉어대는 가래는 더욱더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날 새벽에도 로비에는 작업자들의 발걸음들이 분주했다. 사무실에 들어가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로비를 가로질러 가는 작업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뒷모습에서 그의 가족들을 보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작업자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맞은편 건설 현장의 작업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가족들이 보였다. 양육비를 벌기 위해 나와 있는 아버지의 발걸음, 부모 요양비를 벌기 위해 나와 있는 자식의 발걸음,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발걸음들이었다. 나의 편견과 옹졸함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작업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썼던 즉흥시를 그들에게 헌사한다.
바람막이 하나 없는 새벽 공사장
가식을 벗어던진 질긴 겉옷,
투박한 신발들의 분주한 발걸음
뜨거운 물 부어 휘저은
값싼 믹스커피 한 컵 훔켜잡고
마중물 부어 우물물 끌어올리듯
후룩후룩 빈 내장에 온기 밀어 넣는다
잠들어 있는 가족들 깰까
까치발로 집 나섰을 발걸음들
저마다의 무거운 식솔 어깨에 짊어지고
동트기 전 새벽을 오롯이 혼자서 내딛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근한 가장의 발걸음들이 집결하는 새벽 공사장
그 사랑을 우직하게 행하는 성직자들의 걸음이다
짙은 먼지 요란한 소음
향기로운 예물로 드려지는 새벽 예배당이다
성경에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라는 구절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명구이다. 해도 뜨지 않은 꼭두새벽에 현장으로 달려오는 그들은 제일의 사랑을 투박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잠결 알람 소리에 깨서 빈 속으로 뛰쳐나왔을 그 발걸음은 성실하고 근면한 발걸음이다. 그런 발걸음들이 만들어 내는 흙과 먼지는 역동의 기도 소리요, 그곳은 성스러운 예배당인 것이다. 사랑은 예쁜 옷 입고 꽃다발 사서 무릎 꿇는 프러포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예배당은 깔끔한 옷 차려입고 사랑에 대한 설교를 듣는 잘 갖춰진 곳만 예배당인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내딛는 그 발걸음이 제일의 사랑이요, 그곳이 거룩한 예배당인 것이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옹졸하기 짝이 없는 나의 심성을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