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에 10분 자유시간 갖기, 깨지 않고 쭉 자기, 혼자서 외출하기 이런 것들을 간절히 바랐지만 이루어진 날은 거의 없었다.
육체적 고통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힘들었다. 육아를 잘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 이런 고민들과 생각들로 사로잡혀 있었다.
아이를 나무 키우듯 그저 키우면 된다. 나무처럼 그저 키우고 싶지만 아무래도 ‘잘’이라는 단어 때문에 뭔가 부자연스러운 육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또, ‘내 아이는 상처받지 않게 키울 거야!’ 이런 틀에 박힌 사고로 키워서 그런지 육아에 대해 스스로 지쳐가고 방향성을 잡지 못했다.
육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때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속에 내 아이와 나의 상황에 딱 맞는 정보를 찾으려 애썼다. 아이의 성향과 상황이 모두 다른데 딱 맞는 정보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영양가 없는 정보들을 계속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엄마의 정신이 건강하고 자존감이 높으면 아이는 저절로 잘 큰다.’였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이다.
그동안 나를 억압하며 지내온 것일까? 별문제 없이 지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나의 취약한 면을 가감 없이 어렵지 않게 들어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났다. 나의 실체를 아이가 드러낼 때 도망가고 싶고, 조용하게 꾹 외면하고 싶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면서 그때그때 위기를 넘기고, 시답지 않은 노력을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아이는 잘 크고 있는데 방향성을 잃고 초초해하는 나를 보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 단단히 꼬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꼬임 인지도 잘 몰랐다. 나의 꼬임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몇 번이고 도망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마음을 먹고 직면하자,
내 안의 깊숙한 속에 있던 내면 아이가 툭! 펑! 하고 튀어나왔다.
내면 아이를 처음 만나고 조금 놀랬다. 회색 빛 커다란 벽이 있었고, 매우 차갑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거기에 내면아이가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다리를 쭈그리고 두 발목을 양팔로 감싸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눈, 코, 입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무슨 공포영화도 이보다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놀랬지만 일단 그 아이에게 옷을 바꿔 입혀 주었다.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은 긴 펌 머리와 흰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혀 주었다. 아이가 어색해 보여 다시 아이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과 편하고 밝은 색의 옷을 입혀 주었다. 아이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뽀얀 피부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내면아이를 만났지만 아직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옷만 갈아입혀주고 그대로 두었다. 그래도 내면아이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안정이 되는 느낌이었다.
내면아이는 아직 차갑지만 천천히 뜨겁게 활기를 불어넣어 볼 생각이다.
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중이지만, 솔직히 모든 면에서 버거울 때가 많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작은 것 하나하나 노력해 나가고 있다. 그동안의 습관과 생각 때문에 작은 변화도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나면 조금씩 달라진다. 작은 성취부터 천천히 이루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