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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의 별이 빛나는 아를

by 마리

남프랑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묻는다면 대답할 수가 없다. 지금은. 오래전이었다면 아를을 골랐겠지만. 처음 아를에 갔던 시기가 2011년 4월 이맘때였다. (10년 전이라니!) 아비뇽에서 하루를 머물고 아침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다시 아를로 건너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저녁 기차를 타고 머물고 있던 그르노블로 돌아갔는데, 요즘 그때가 문득문득 생각난다. 서머타임이 시작되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이 공기에서부터 느껴지는 4-5월이 되면 유독 남프랑스를 여행했던 때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아를로 랜선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남프랑스의 별이 빛나는 도시 아를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아를


photo © Bonheur Archive 프랑스 기차역에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도록 피아노를 놓아두는데 꼬맹이의 좌절한 듯한 뒷모습이로 귀여워서 사진에 담아왔다.

아비뇽에서 기차를 타면 아를까지는 20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아비뇽과 아를을 함께 묶어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를은 도시 이름보다는 반 고흐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고흐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밤의 카페', '해바라기', '아를의 도개교', '별이 빛나는 밤'까지. 대중들이 다 아는 고흐의 명작들이 대부분 아를에서 탄생했다. 고흐는 아를뿐만 아니라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 등 다른 곳에서도 작품 활동을 했지만 고흐의 그림 하면 사람들이 바로 떠올리는 유명한 작품은 대부분 아를에서 나온 셈이니 고흐의 마을이라고 부를 만도 하다.

photo © Bonheur Archive

고흐가 아를에 머문 기간은 15개월에 불과하다. 그러나 '화가마을'로 만들고 싶어 했을 정도로 아를을 사랑했고, 아를에서만 30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고흐도 유독 애정했던 도시라 그런가. 아를은 도시 전체가 고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역에서부터 고흐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고,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그의 흔적이 나타난다. 반 고흐 카페,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은 고흐 투어에서 빼놓지 않고 꼭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photo © Bonheur Archive

2014년에는 15세기에 지어졌던 호텔을 개조한 반 고흐 재단(Fondation Vicent Van Gogh)이 문을 열었다. 고흐가 아를에서 완성한 작품의 대부분은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상설 전시 중인 그의 작품은 복제품이지만 다른 화가들의 전시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기에 미술에 관심이 많다면 꼭 들러보기를 추천하는 곳이다. 첫 아를 여행 후 2017년 여름, 부모님과 함께 다시 아를을 찾았을 때 기차역에서 곧장 반 고흐 재단을 가장 먼저 찾았다.


photo © Bonheur Archive

전시도 좋지만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아를의 풍경도 못지않게 인상적이고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트워크 매장 역시 볼거리가 많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아트북이나 재단에서 제작 판매하고 있는 에코백, 전시 포스터 등 서적이나 문구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미지옥 같은 곳이랄까. (에코백이며 아트북이며 이것저것 잔뜩 집어 들었다가 짐 불어난다고 한 소리 듣고 무게 걱정으로 사 오지 못한 아트북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아를 골목길 산책


photo © Bonheur Archive

반 고흐 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아를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문화/역사적으로도 오래된 도시로 원형 경기장과 원형 극장 등 고대 로마 시대의 흔적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역사책 읽는 건 좋지만 여행 가서 유적지만 찾아다니는 건 좋아하지 않아 원형 경기장이나 극장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코시국 이전까지는 극장과 경기장에서 공연이 열렸다고 한다. 상상도 가지 않을 만큼 오래된 원형 극장에서 열리는 연극은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하긴 했는데 여행이 이렇게 기약 없는 일이 되어버릴 줄 알았더라면 보고 올 걸 후회막심이다.


photo © Bonheur Archive

아를은 지중해에 인접한 도시답게 공기, 바람, 풍광까지 프랑스의 전형적인 소도시와는 조금 다르다. 프랑스 소도시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한 스푼. 그것이 내가 보고 느낀 아를의 매력이었다. 반 고흐나 고대 로마시대 유적지를 제외하고 아를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싶다면 관광안내소에서 나눠준 지도는 접어두고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골목 구석구석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photo © Bonheur Archive

집주인의 개성과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담벼락과 대문 구경은 감성 여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취향 저격이거든.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가 중요하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잔소리를 듣지만 곧 죽어도 그놈의 감성은 버리지 못하는 내가 골목을 걸으며 쉴 틈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통에 남의 집 대문 사진 좀 그만 찍으라고 한 소리 들은 건 안 비밀.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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