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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잔상을 남기는 도시 남프랑스 아비뇽 산책

by 마리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북부에서부터 남부까지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산이 반기고 지역마다 음식도 고유의 특색을 지니고 발전했으니 이쯤 되면 유럽에서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건 프랑스라고. 그중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곳은 단연 남프랑스다. 남프랑스는 여행자들에게도 파리 다음으로 사랑받는 지역이다.



아비뇽의 문화유산들 (교황청 & 생 베네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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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남프랑스 여행을 준비할 때 대게는 니스나 마르세유를 떠올리지만 나는 아비뇽을 추천한다. 생애 첫 남프랑스도 아비뇽이었고, 기차여행을 계획했을 때도 아비뇽을 중심으로 아를,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까지 엑스-마르세유 지방을 둘러봤었기에 나에게는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남다른 애틋함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아비뇽을 가보고 나면 알게 된다. 여행자들이 떠올리는 수려하고 때로는 화려한 남프랑스 풍경과 정반대인 이 자그마한 도시가 왜 이토록 마음속에 잔상을 남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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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아비뇽은 '아비뇽 유수'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14세기, 왕권과 가톨릭 세력이 대립하면서 교황이 바티칸으로 가지 못하게 되자 로마 교황청 자리가 아비뇽으로 옮겨왔고, 그 뒤로 70년 넘게 아비뇽에 머물렀다. '아비뇽 유수'는 도시에도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 변화 덕분에 만들어진 문화유산과 역사적 배경은 지금까지 아비뇽을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로 만들었다.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한 교황청은 웅장한 석조건물과 화려한 내부 장식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데 여행자들로 붐비는 여름휴가철이면 교황청 내부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해마다 6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아비뇽의 랜드마크다. 역사적 사건이나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다면 교황청 관람은 아비뇽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 (우리는 긴 줄을 감내할 만큼은 열정적이지 않아 교황청 내부 관람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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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교황청 말고도 볼거리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아비뇽 다리로 알려진 생 베네제 교. 1177년부터 1185년까지 론 강 위에 지어진 다리로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순례자들과 상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홍수 때마다 다리가 무너져 보수와 재건축을 반복하다 현재는 끊어진 채로 남았다. 생 베네제 교는 프랑스 동요에도 등장한다. 요즘 어린이가 아기상어 송을 부른다면 중세 시대 아비뇽 어린이들은 이 노래를 불렀을지도. '아비뇽 다리 위에서 둥글게 둥글게 함께 춤을 추자'는 내용의 <아비뇽 다리 위에서 (Sur le Pont d'Avignon)>에 등장하는 다리가 생 베네제 교다.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원을 지어 춤을 추는 것에서 동요가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아비뇽 다리에 올라가면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교황청만큼 긴 입장 줄을 설 필요는 없기에 올라가 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구시가지 성벽 위에서 혹은 페리를 타고 강 건너, 빌뇌브 데 자비뇽에서 다리를 바라보는 것이 좀 더 좋아한다.



아비뇽에서 보고, 듣고, 걷기


(좌)COLLECTION-LAMBERT-7 © Pascal Martinez (우) Yvon Lambert Paris © Librairie Yvon Lambert

아비뇽에는 중세부터 르네상스와 현대까지 아우르는 예술품을 접할 수 있는 미술관도 많다. ofr 서점과 함께 파리에서 유명한 서점인 이봉 랑베르 서점을 만든 유명 컬렉터이자 딜러인 이봉 랑베르(Yvon Lambert)가 기증한 랑베르 컬렉션은 아비뇽 현대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2000년대에 아비뇽에서 문을 연 이봉 람베르의 컬렉션은 2012년 국가에 기증되었다고. 파리의 이봉 람베르 서점은 1960년대에 문을 열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전시도 개최했으나 2014년에 갤러리는 문을 닫고 각종 예술 서적과 전시 카탈로그, 희귀 도서, 음반, 아트 컬렉션 등을 판매하는 서점으로만 운영 중이다. (그러나 간헐적으로 팝업 형식의 전시를 개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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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아비뇽은 문화와 축제의 도시기도 하다. 7월이면 연극제가 열리는데 연극에는 문외한인 나도 에든버러 연극제와 함께 유일하게 알고 있을 만큼 세계적으로 꼽힌다. 7월에 열리기 때문에 바캉스 시즌과 잘 맞추면 열기로 가득한 아비뇽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방문할 때마다 시기가 달라 한 번도 보진 못했다.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은 연출가 장 빌라(Jean Vilar)가 처음 개최되어 지금은 춤,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예술이 아비뇽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무료 공연도 있고 연극제 기간이 아니어도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거리 곳곳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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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아비뇽은 분명 프랑스지만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많이 자아낸다. 구시가지 성벽을 따라 곳곳에 숨겨진 골목길, 길게 뻗어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 거리 화가들과 버스킹으로 채워지는 시청 앞 광장, 해 질 무렵 론강 건너 빌뇌브 데 자비뇽 (Villeneuve-des-Avignon)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 노을까지.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 이국적인 아비뇽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중 가장 좋았던 코스를 추천하자면 나를 성곽 도시의 매력에 빠지게 해 준 아비뇽 구시가지 성곽을 따라 걷는 산책로!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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