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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07. 2023

켄 로치 황금종려상 수상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씨네아카이브 24. 킬리언 머피 특집 Part.1

밤공기가 제법 서늘해진 9월의 씨네아카이브는 다시 돌아온 배우특집! 그중에서도 눈빛으로 관객들뿐만 아니라 감독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배우 특집이다. 첫 주자는 킬리언 머피. 오묘한 분위기의 마스크와 깊고 푸른 눈이 특히 매력인 아일랜드 배우로 개봉 후 여전히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오펜하이머>로 인해 입덕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을 것 같다. 사실 9월 주제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는데 <오펜하이머>를 보고 바꾸게 된 것도 킬리언 머피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나 할까) 킬리언 머피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오랜 시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주연을 맡은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한 번, 반대로 역할의 비중과 관계없이 짧은 시간 출연했음에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것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고심 끝에 고른 킬리언 머피 특집 추천 영화는 그의 비중이 두드러졌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오펜하이머>다.


"씨네아카이브 24. Eyes blue like the Atlantic (배우특집 ep.4 킬리언 머피)" 전문 읽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켄 로치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발행인이 킬리언 머피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다.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내전을 배경으로 한 형제간의 갈등을 그린 켄 로치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는 2006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제목은 부활절 봉기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젊은이의 운명을 노래한 19세기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시에 멜로디를 붙여 민요로 부르곤 한다는데 영화에서도 영국군에게 맞아 죽은 미하일의 장례식에서 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켄 로치 감독은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며 자신의 신념을 일관되게 스크린에 구현해 온 영국의 대표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함께 그의 독특한 촬영 방식도 유명한데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 매일 그날 찍을 분량만큼의 대본만 준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시나리오 순서대로 촬영하기를 고집하는데 이는 캐릭터가 겪는 사건을 시간 경과에 따라 찍으며 배우들이 영화 속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시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캐릭터 연구를 통해 나오는 연기가 아닌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나오는 연기로 배우에게서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켄 로치 감독만의 방법으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배우가 캐릭터를 분석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고, 매일 쪽대본으로 촬영하는 것과 다름없기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킬리언 머피는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바로 그것을 역할로 승화시킬 수 있고,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닌 그 인물 자체가 되어 같은 과정을 겪게 되기 때문에 역할의 감정에 완벽하게 동의하게 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진정한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듯 진정한 연기자는 대본이나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 뭐 그런 맥락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내전을 다루고 있기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감상하면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다. 1916년 부활절 기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IRB(Irish Republican Brotherhood)와 IV(Irish Volunteers), ICA(Irish Citizen Army)가 주축이 되어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지만 영국군에 의해 금방 진압되고, 사건을 주도한 ‘제임스 코널리’라는 인물이 처형당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이후 1918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신페인당이 다수의 의석을 얻어 의회를 설립, 아일랜드가 독립국임을 선언하지만 독립은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영국으로부터 더욱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IV가 ‘아일랜드 독립군’으로 알려진 IRA(Irish Republican Army)로 명칭을 바꾸고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간다. 1920년 아일랜드 남부 지역에서 게릴라 투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나자, 영국은 휴전 협정을 맺고 북아일랜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자치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지역을 제외한다는 조약을 두고 IRA 내부에서 조약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이는 내전으로 번진다. 아일랜드 내전은 온건파의 승리로 끝나며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학 되는데 이후 1940년대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얻어 아일랜드는 지금의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북아일랜드 지역은 아일랜드 섬 내 영국령으로 남았다.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은 역사적 사건이자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연합 왕국으로 지금도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켄 로치 감독은 “역사는 언제나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중요한 테마”라며, 영화를 통해 현재의 다른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1920년 아일랜드. 젊은 의사 데미언은 런던의 병원에 일자리를 얻어 떠나던 날,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군의 횡포를 목격하고 형 테디와 연인 시네이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오랜 투쟁 끝에 아일랜드는 마침내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지만, 일부 지역의 자치만을 허용한다는 영국의 발표에 독립군 사이에는 대립이 생기고, 이로 인해 데미언은 형 테디와도 대립하게 되고 연인 시네이드와의 애정에도 이상이 생긴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형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에서 위기를 맞게 된 데미언의 선택과 그 선택이 불러올 운명의 끝은 어떻게 될까?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의 독립투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영화 속 주된 갈등 역시 영국군과 아일랜드 독립군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구조는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변하기 시작해 아일랜드 내부의 갈등으로 바뀌게 된다. 영국과의 평화 협정에서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이 아닌 일부 지역을 자치령으로 남겨두고 영국 국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조약을 놓고 이에 동의하는 온건파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강경파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고 이러한 갈등은 형제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져 형 테디는 온건파, 동생 데미언은 강경파에 서서 영국군을 향해 겨눴던 총부리를 서로에게 겨눈다. 


두 형제의 선택과 갈등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영국군의 조건에 동의하는 온건파가 현실과 타협하는 쪽이라면 데미언이 선택한 강경파는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이상을 추구한 쪽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조국의 미래라는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씁쓸하지만 대부분 결말은 현실이 승리할 때가 많다. 그리고 실제 아일랜드 내전의 결과도 강경파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이후 1940년대 후반 헌법개정을 통해 아일랜드는 영국 왕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게 되는데 이는 끝까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던 지난 과거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영화가 은연중에 암시하는 결말이 마냥 씁쓸하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다. 


켄 로치 감독은 정치적인 주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노동자 계급,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들어 왔는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영국군이 아일랜드 독립군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켄 로치 감독은 영국 출신이라는 것. 영국 감독이 아일랜드 독립군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 건데 반대로 출연한 배우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출신이란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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