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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Sep 21. 2023

<브루클린> 사랑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인데요

씨네아카이브 25. 시얼샤 로넌 특집 (배우특집 ep.5)

킬리언 머피에 이은 배우 특집은 시얼샤 로넌! 눈빛이 매력적인 배우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두 사람을 떠올리게 됐는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둘 다 아일랜드계 배우에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는 점까지 의외로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이름은 철자로 적어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이들이 많아 온갖 기상천외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많이 들어봤다고 하며 인터뷰마다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꼭 한 번은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참고로 ‘Saoirse’는 아일랜드어로 ‘자유’를 뜻한다고. 


시얼샤 로넌은 아역 때부터 지금까지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에 참여하는 다작 배우이자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엇보다 파란만장한 할리우드에서 구설수나 열애설 없이 (물론 지금은 배우 ‘잭 로던’과 만나고 있지만...) 본인의 소신과 개성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배우라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외적으로 주목받는 부분이 크면 연기하는 캐릭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에도 규정된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영화 안과 밖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기에 그 누구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씨네아카이브 25. Can't take my eyes of you (배우특집 ep.5 시얼샤 로넌)" 전문 읽기



<브루클린 (Brooklyn)>, 존 크롤리, 2015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브루클린>은 콤 토이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아일랜드 여성의 미국 정착기를 담았다. <와일드>, <어바웃 어 보이>의 닉 혼비가 각본을 맡았는데 소설에 매료된 제작자가 처음으로 영화화되는 원작의 서정성을 살리기 위해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받는 닉 혼비에게 특별히 각본을 부탁했다고 한다. 영화는 제88회 아카데미 작품상, 각색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았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7%라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하며 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원작을 각색하여 스크린에 섬세하게 담아낸 연출과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1950년대 향수를 제대로 표현했다는 언론의 극찬이 두드러졌는데 배경, 의상, 색감 등 빼어난 영상미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정반대 되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반대되는 두 장소가 주 무대로 펼쳐진다. 한 곳은 아름답고 단조로운 느낌의 아일랜드 시골 마을 애니스코시, 다른 한 곳은 에일리스가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떠나온 뉴욕 브루클린이다. 제작진은 두 장소를 섬세하기 구현하기 위해 브루클린, 코니아일랜드 해변, 캐나다 몬트리올 등 여러 곳에서 촬영을 진행했으며 1950년대 감성을 완벽하게 구현한 의상은 스트릿 포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특히 비비안 마이어와 엘리어트 어윗이 포착한 ‘뉴욕의 순간’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제작진들의 세심한 노력 덕분인지 영화는 레트로 색채에 감각적인 의상과 소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영상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시얼샤 로넌은 <브루클린>을 통해 처음으로 성인 연기에 도전했는데 서로 다른 장소에서 만난 두 남자 사이에서 삶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하는 아일랜드 이민자 ‘에일리스’의 감정선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다. 시얼샤 로넌은 각본을 읽자마자 캐릭터에 공감하며 두 남자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두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에일리스가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에일리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남자로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통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에모리 코헨이 에일리스에게 첫눈에 반해 애정을 쏟아내는 자유분방한 이탈리아 청년 ‘토니’를, <어바웃 타임>을 통해 로맨틱한 영국 남자의 정석을 보여준 돔놀 글리슨이 젠틀하고 성숙한 매력으로 에일리스의 마음을 흔드는 ‘짐’을 연기해 시얼샤 로넌과 함께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 주었다. 


(출처: 영화 스틸컷)

낯선 뉴욕 브루클린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에일리스는 낮에는 고급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에서 공부하며 브루클린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수병에 시달린다. 한편, 공동생활을 하는 아일랜드 커뮤니티 여성들의 도움과 격려로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에일리스는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점차 뉴욕에서의 삶에 적응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작스럽게 날아온 언니의 부고로 고향에 가게 된 에일리스는 그곳에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짐과의 만남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두 남자 그리고 두 장소 사이에서 에일리스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브루클린>은 표면적으로는 사랑 영화처럼 보이지만 성장 영화에 가깝다. 고국 아일랜드를 떠나 뉴욕 브루클린으로 오게 된 에일리스가 두 남자와 두 장소 사이에서 갈등하며 선택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에일리스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 가를 보여준다. 영화의 주요 동력이 두 남자 사이에서 에일리스가 선택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에일리스의 감정선에 집중해서 따라가다 보면 ‘두 남자 사이에서 에일리스의 선택이 삶의 가치 선택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토니’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만난 가난한 이탈리아계 이민자로 ‘짐’은 고향 아일랜드에서 만난 유복한 가정의 매너 있는 남자로 그려지지만 단순히 두 사람의 조건이나 환경을 떠나 에일리스에게 두 남자의 의미를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 토니는 ‘아일랜드 커뮤니티 댄스 클럽에 놀러 온 이방인’으로서 에일리스를 처음 만난다. 에일리스는 토니를 만나기 전까지 브루클린에서의 삶이 아일랜드 커뮤니티를 벗어나지 않았는데 토니를 만남으로써 주변 환경에도 변화가 생긴다. 다시 말하면 “토니는 ‘에일리스가 뉴욕에서 만난 최초의 비아일랜드인’인 셈이다. 짐은 고향 아일랜드에서 만났지만 ‘고향 마을 특유의 획일성에서 벗어난 남자’였다는 점에서 에일리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이 두 지점이 에일리스에게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두 남자와 두 장소 사이에서 에일리스가 자신의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 역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에 있을 때는 뉴욕을 환상의 장소로 여기고, 뉴욕에서는 고향인 아일랜드를 그리움의 장소로 여긴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 아일랜드에서 ‘떨어져 있어 잊고 있던 현실의 참담함’을 깨닫는 계기가 생기고, 그녀는 '어디에서 어떤 가치관으로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영화는 에일리스의 이러한 감정 변화를 뉴욕과 아일랜드라는 두 장소를 통해 비교함과 동시에 두 가지 장소와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토니와 짐 사이에서의 선택이 두 가지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으로 보이도록 한다. 


<브루클린>은 시얼샤 로넌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시얼샤 로넌의 필모그래피를 떠나서도 손에 꼽을만큼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를 봤을 무렵이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막 시작해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사실 그 누구보다 에일리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방인이라는 같은 처지에서의 공감을 넘어 에일리스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에일리스의 태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된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두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브루클린>은 인생의 두 갈래길 앞에서 흔들릴 때 나침반 역할을 해 줄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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