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Sep 28. 2023

그때의 우리에겐 기다림이 필요했다 <체실 비치에서>

씨네아카이브 25.  시얼샤 로넌 특집 (배우특집 ep.5)

킬리언 머피에 이은 배우 특집은 시얼샤 로넌! 눈빛이 매력적인 배우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두 사람을 떠올리게 됐는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둘 다 아일랜드계 배우에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는 점까지 의외로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이름은 철자로 적어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해하는 이들이 많아 온갖 기상천외한 발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많이 들어봤다고 하며 인터뷰마다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꼭 한 번은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참고로 ‘Saoirse’는 아일랜드어로 ‘자유’를 뜻한다고.


시얼샤 로넌은 아역 때부터 지금까지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데뷔 이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에 참여하는 다작 배우이자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엇보다 파란만장한 할리우드에서 구설수나 열애설 없이 (물론 지금은 배우 ‘잭 로던’과 만나고 있지만...) 본인의 소신과 개성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배우라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외적으로 주목받는 부분이 크면 연기하는 캐릭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에도 규정된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영화 안과 밖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기에 그 누구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씨네아카이브 25. Can't take my eyes of you (배우특집 ep.5 시얼샤 로넌)" 전문 읽기 



<체실 비치에서 (On Chesil Beach) >, 도미닉 쿡, 2017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이언 매큐언은 시얼샤 로넌을 대중들에게 알린 <어톤먼트>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어톤먼트> 영화화 당시에는 각본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체실 비치에서>는 각본에 참여했는데 작품이 각색하기에 알맞은 플롯을 갖추고 있어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혼자서 플롯을 구상하고 작품을 완성하는 소설 집필과 달리 협업이 주를 이루는 영화 작업에 색다른 기분을 표하며 각본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작품의 영화화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고.


시얼샤 로넌이 연기한 ‘플로렌스’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로 제작진은 <브루클린>에서 시얼샤 로넌을 눈여겨본 후 합류를 제안했으며 이언 매큐언 역시 <어톤먼트>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시얼샤 로넌의 합류를 바라며 캐스팅이 성사되었는데 제작진의 안목을 증명하듯 결혼을 앞둔 여인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줬다. 시얼샤 로넌과 호흡을 맞춘 빌리 하울은 <체실 비치에서> 이전까지 단 두 작품만으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영국의 떠오르는 차세대 배우로 불리며 결혼을 앞둔 역사학도 에드워드 역을 맡아 사랑에 빠진 열정적인 모습부터 순수한 모습까지 다양한 감정의 깊이를 가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에드워드 역할의 경우 플로렌스와의 연기합이 중요해 당시 뉴욕에서 연극에 출연 중인 시얼샤 로넌과 대기실에서 함께 연기하는 방식으로 오디션을 진행하여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역할을 따냈다고 한다.


극 중 중요한 배경인 ‘체실 비치’는 잉글랜드 남부에 위치한 해변으로 화석이 풍부하고 야생 동물에게 중요한 장소라 특별 과학 대상지로 지정된 곳이다. 이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최대한 해변을 활용하여 영화적으로 보이게 하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촬영을 진행했다고. 이외에도 에드워드의 산책로였던 ‘칠턴 힐즈’, 플로렌스와 에드워드가 만난 옥스퍼드, 플로렌스가 연주자로 오르기를 꿈꿨던 런던 ‘위그모어 홀’ 등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마다 영국 특유의 클래식하고 모던한 분위기가 잘 담겨 있다. <체실 비치에서>는 사운드트랙도 돋보이는 작품인데 플로렌스가 바이올리니스트인 만큼 클래식 선율이 영화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출처: 영화 스틸컷)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지인 ‘체실 비치’에 도착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서툴렀기에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게 되고 서로가 알지 못했던 비밀이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밝혀진다.


영화는 중반부까지는 유쾌하게 흘러가다 후반부터 흐름이 달라지면서 앞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보여지는데 이는 영화 중간중간 ‘플래시백’ 구조를 통해 암시하는 듯한 연출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과거가 드러날수록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해 보였던 연인이 사실은 굉장히 다른 점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정환경, 성격, 전공, 좋아하는 음악까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는 것을 되짚어 보면 두 사람의 결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갈등을 통해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보여주기에 어떤 면에서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종반부에 가면 두 사람의 문제가 사실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영화는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속에 시차를 개입시켜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바꿔 생각해 보면 ‘지금은 그때를 후회하며 다르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그때와 지금 사이의 시간의 흐름을 전제”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서툰 모습 때문에 화가 나고 과거를 신경 쓰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플로렌스는 말하기 힘든 상처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물이다. “서투름은 과거에 경험을 충분히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려움은 과거에 겪었던 사건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두 사람은 서투름과 두려움을 치유할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어긋났다”고도 볼 수 있다.


당장 극복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수 없는 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기다림이 해결책인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영화의 마지막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에게 '둘이 함께 돌아가자'라고 이야기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던 사람은 플로렌스였고 그 시간을 에드워드가 함께 견뎌주길 바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두 사람을 통해 ‘인생에 있어 중요한 한순간이 있고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걸 떠올려 보면 에드워드에게 함께 돌아가자는 플로렌스의 권유는 에드워드의 인생에서 중요한 한순간처럼 보였기에 플로렌스의 마지막 말과 함께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 장면의 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였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매거진의 이전글 <브루클린> 사랑 영화가 아니라 성장 영화인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