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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06. 2023

런던 로맨스 영화의 정석 <노팅힐>

씨네아카이브 26. 사랑하고 싶은 런던의 가을 Part. 1

가을 타서 괜히 센치해진 마음을 달래고 몽글몽글 달착지근한 감성 끌어올리기에는 로맨스 영화만 한 게 없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일부러 로맨스 영화를 많이 찾아보게 된다. 호불호 없이 모두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로맨스 영화를 고르다 보니 의외로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로맨스 명가로 불리는 ‘워킹 타이틀’의 작품들이 리스트 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기승전 발행인 마음이지만…) 알고 보면 런던은 파리보다 더 사랑하기 가장 좋은 도시였을지도.


로맨스 영화는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을 통해 결국은 서로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며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마침내 두 사람이 이어지는 결말의 판타지도 커지는 장르다. 사실 로맨스 장르에서 중요한 건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지 장소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만나고 함께하는 곳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낭만과 판타지를 배가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런던은 사랑하고 싶은 도시로 충분하다. 26번째 씨네아카이브는 런던을 배경으로 때로는 로맨틱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 2편을 소개한다. 


"씨네아카이브 26. 사랑에 빠지고 싶은 런던의 가을 (영화로 떠나는 여행 ep.3)" 전문 읽기



<노팅힐 (Notting Hill>, 로저 미첼, 1999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로맨스 영화 그것도 런던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노팅힐>을 빼놓을 순 없다.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올 타임 베스트 로맨스 영화로 불리는 작품이자 ‘워킹 타이틀’을 로코의 명가로 만들어 준 작품이기도 하니까. 그와 더불어 런던의 노팅힐 지역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어 주기도 했고. 휴 그랜트가 노팅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윌리엄 태커를, 줄리아 로버츠가 평범한 사랑을 기다리는 유명 배우 애나 스콧을 연기했는데 두 사람은 로저 미첼 감독과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가 윌리엄과 안나 역으로 가장 먼저 캐스팅하고 싶었던 배우였다고 한다. 줄리아 로버츠의 경우 애나 스콧이 진부한 캐릭터라 생각해 거절하려 했으나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을 돌려 출연을 결심했다고.


영화는 개봉 이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인생 로맨스 영화로 불리며 사랑받았는데 제작비 4천2백만 달러로 무려 3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비평가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아 영국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을 비롯해 영국 코미디상, 영화 음악상인 브리트상을 수상했다. 특히 영화의 삽입곡인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 곡은 원래 프랑스 가수 샤를 아즈나부르가 부른 곡이 원곡이다. 감독이 영어 버전으로 번안을 부탁하여 사용하였고, 영화가 종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번안곡 역시 원곡의 인기를 뛰어넘게 됐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세계적인 스타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불리는 ‘애나 스콧’.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그녀는 평범한 사랑을 꿈꾼다. 런던 노팅힐에서 여행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남자 ‘윌리엄 태커’는 우연히 자신의 서점을 찾은 애나 스콧과의 예기치 못한 만남을 계기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평범한 사랑을 기다리는 여자 애나와 특별한 사랑이 두려운 남자 윌리엄의 동화 같은 로맨스가 런던 노팅힐에서 펼쳐진다.


영화는 런던의 노팅힐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하다 못해 소심해서 어딘가 짠해 보이는 남자 윌리엄 태커가 우연히 자신의 서점을 찾아온 미국의 유명배우 애나 스콧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전형적인 로맨스 장르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가 평범한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전개라면, <노팅힐>은 평범한 남자가 여신을 만난다고 해야 할까.  <노팅힐>이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며 때로는 ‘인생 로맨스 영화’로 불리는 이유는 매력적인 주인공, 윌리엄과 애나를 연기한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케미, 윌리엄의 친구들로 등장하는 감초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극 중 윌리엄은 어디 데려다 놔도 눈에 띄지 않을 무채색에 가까운 평범한 남자로 그려진다. (그 시절 휴 그랜트의 미모가 유일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지만...) 윌리엄의 평범함은 관객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애나와 윌리엄의 만남, 이별, 재회의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로맨스 감성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두 사람의 위치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하나 남은 브라우니를 두고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 찾기 대결’ 장면은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자 힘든 순간을 견뎌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팅힐>은 런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영화이기도 한 만큼, 노팅힐을 비롯해 피카딜리 리츠 호텔, 로스메드 정원, 햄스테드 히스, 코로넷 극장, 사보이 호텔 등 런던의 주요 명소들이 고루 담겨있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면 런던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런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렘을 안겨주는 런던 여행의 바이블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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