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27. 픽사 단편 애니메이션 추천작 6편
작년 이맘때도 픽사 장편 영화를 소개했었는데 그때도 언급했지만, 디즈니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잘 만든다면, 픽사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 보는 장르라는 편견을 부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픽사가 선보이는 기발한 캐릭터와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는 주제와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신선함과 함께 때로는 깊은 울림을 선사하기도 한다. 픽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은 5-8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직 픽사 만이 할 수 있는, 픽사의 장기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픽사의 단편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픽사를 있게 한 근간을 잊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기에 픽사 단편을 좋아하는 숨은 팬으로서 픽사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아카이빙은 발행인 한정 가장 좋았던 픽사의 단편 영화 6편을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27. 짧아서 더 인상적인 픽사 단편 영화들" 전문 읽기
<룩소 주니어 (Luxo Kr.)>, 존 라세터, 1986년 개봉
<룩소 주니어>는 픽사의 마스코트인 룩소에 관한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이는 아카데미에 처음으로 지명된 CG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파파 룩소가 룩소 주니어가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보여주는 것이 전부지만, 짧은 시간 동안 아이와 놀아주는 부모님의 모습부터 가지고 놀던 공이 터져 좌절했다 더 큰 공을 발견하고 신이 난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사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다. 픽사가 가장 잘하는 '의인화한 사물에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더하는 방식'을 짧은 시간 동안 인상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존 라세터 감독은 주인공 캐릭터를 고민하던 중 책상 가장 가까이에 있던 램프를 보고 의인화하여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사물의 의인화는 픽사의 가장 큰 장기가 되었다는 썰이…)
<틴 토이 (Tin Toy)>, 존 라세터, 1988년 개봉
<틴 토이>는 픽사의 역작으로 꼽히는 <토이 스토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작품. 해당 단편의 속편을 만들려던 계획이 장편 제작으로 바뀌면서 탄생한 영화가 <토이 스토리>다. 전작인 <룩소 주니어>에 이어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수상까지 하면서 <틴 토이>는 아카데미 사상 첫 CG 애니메이션 수상작에도 이름을 올렸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역시나 ‘픽사가 픽사했다’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의인화된 사물에서 설렘, 두려움, 놀라움, 당황, 망설임, 결단력, 토라짐 등의 다양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의인화된 장난감이라는 것에 한 번, 이를 ‘아이와 장난감’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픽사의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되면서. 문득, 어린 날 나의 장난감들도 <틴 토이> 속 장난감 병정과 같은 감정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는...
<게리의 게임 (Geri’s Game)>, 잰 핑카바, 1997년 개봉
<게리의 게임>은 혼자서 체스하는 노인의 이야기 그린 작품. 아카데미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22회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픽사 단편에서는 처음으로 ‘사람’이 주인공으로 할아버지 혼자서 체스를 잘하는 쪽과 못하는 쪽을 모두 연기하며 즐거움, 난처함, 조롱, 통쾌함 등의 감정을 대사 한 마디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 모두 전달하며 인물과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기술력까지 고루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게리는 혼자 놀기의 달인으로 나오는데 그 모습이 애처롭기보다 나도 게리 할아버지 나이 즈음이 되었을 때 저렇게 유쾌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달까. ㅎㅎㅎ 해당 작품으로 픽사 단편 애니메이션을 입문하게 된지라 개인적으로는 픽사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또 앞으로도 가장 좋아할 작품으로 꼽고 싶다.
<낮과 밤 (Day & Night)>, 테디 뉴턴, 2010년
<낮과 밤>은 픽사의 단편 중 가장 철학적인 영화로 주저 없이 선택할 작품으로 낮과 밤을 대표하는 두 캐릭터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픽사의 10번째 단편으로 <토이 스토리 3>의 오프닝으로 공개되었고,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다. 개인적으로 <낮과 밤>을 보면서 ‘과연 픽사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낮과 밤이 서로에게 품은 경계심이 조금씩 호기심으로 바뀌고 끝내 화합을 이루는 과정을 단편적인 상징을 통해 매끄럽게 풀어냈다. 특히 화합의 순간을 어깨동무하고 서로의 옆구리를 맞댄 낮과 밤이 일출과 일몰을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한 장면에서는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픽사에 결코 한계란 없는 걸로…) 감독은 미국의 자기 계발 작가로 유명한 웨인 W. 다이어의 라디오를 듣고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파이퍼 (Piper)>, 앨런 발리라로, 2016년
<파이퍼>는 아기 도요새가 엄마의 도움 없이 먹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작품으로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는 지금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실사 느낌이 많이 나는데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도요새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디작은 아기 도요새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어엿한 하나의 개체로 성장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는데 감독은 실제로 해변에서 도요새가 파도를 보고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바오 (BAO)>, 도미 시, 2018년 개봉
마지막 추천작은 <바오>로 <인크레더블 2> 오프닝에 공개된 작품으로 역시나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다. 감독이 중국계 캐나다 여성으로 픽사 최초로 여성 감독이 만든 오리지널 단편이기도 하다. 영화는 자녀가 독립한 후 부모가 겪게 되는 슬픔, 외로움, 상실감을 나타내는 ‘빈 둥지 증후군’을 다루고 있다.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이 자라 집을 떠나자,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상실감을 겪는 중년 여성이 식사 중에 먹던 만두에 갑자기 눈, 코, 입이 생기면서 어린아이처럼 움직이는 바오로 변하자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크게는 부모 자식 간의 유대감을 다루고 있지만, 작품 전반에 아시아계 문화와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작품의 호불호가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었다고. 아무래도 서구 사회가 자녀들을 좀 더 독립적인 개체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인상 깊게 봤는데 특히 아시아 문화와 정서를 픽사만의 창의력으로 풀어내는 방식에 감탄하게 된 작품.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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