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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n 03. 2022

대체 정치가 뭔가요?

정치와 선거에 관한 끄적임

·정치란 무엇인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출처:표준국어대사전)

그러한 정치적 이념이 무색하게도, 작금의 한국에는 정치가 사라졌다. 국민들의 인간답고 평등하며 상호이해 관계의 삶은 희석해진지도 오래다. 국가의 체제 안에는 껍데기만 켜켜이 쌓인 관습적 이데올로기만 흐트러진 채 바람마저 얼어붙었다. 여기저기서 잡음이 새나오고, 하늘에는 까마귀들이 깍깍 지져대며 세상의 혼돈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제야말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엄치(嚴治)가 긴요할 때이지 않겠는가.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의 국민 수준과 연결된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상호 의견을 존중하며, 인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여 귀납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 수준은 어떠한가? 개인의 의견이 혹여 자신과 맞지 않으면 먼저, 날을 세우고 대립할 태세를 갖춘다. 진보냐 보수냐의 단일한 잣대로 일단 분리가 되면 서로가 ‘반대’ 진영의 논리를 포악스럽게 패대기친다. 경청은 온데 간데 없고, 공감능력도 제로다. 서로가 서로의 말만 하느라 대화가 섞이지 않는다. 그뿐이겠는가. 깊게 그어진 선을 두고 적대시하며 혀를 끌끌 찬다. 무기만 들면,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정치가 애통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저조했다. ‘목소리’를 내야 하는 국민들이 입을 닫고 침묵했다. 특히 ‘호남 정치 1번지’인 광주 투표율은 전국 평균(50.9%)을 크게 밑돌았다. 역대 대선·총선·지방 선거를 포함해 광주의 투표율이 40%를 못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방적으로 정치적 이념이 강한 지역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비단 하나의 정치적 이념이 파괴된 것 이상의 의미를 띄고 있다. 

정치적 이념이 신념으로 전락되면 거짓이 와해된다. 즉, 연역적 추리로 인해 거짓이 진실이 되고, 그런 진실이 진리가 된다. 정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있다. 모든 지도자도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도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있다.” 하는 따위이다.

광주의 목소리가 사라진 것은 그들의 신념에 금이 갔고,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광주뿐이랴, 서울을 비롯한 지방 곳곳에서도 진보든 보수든 간에 신념에 가득 차며 큰소리를 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국민에 의한 정치가 입신함이 분명한데, 국민들은 재야(在野)로 전락해 혀를 잃고 죽어가고 있다. 세상이 고요해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치’권에 발을 디딘 사람들의 소리만 종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 죽어가는 재야를 흔들고 있다.

나에게 있어 정치적 소명 같은 것은 없다. 이편이냐, 저편이냐 양분된 영역에 편입해야 할 당위성도 없다. 그러나 재야에 파묻힌 한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의 엄마로서, 한 가정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생활을 이루는 지역구의 일원으로서 우리나라의 ‘존립’과 ‘발전’에 관한 관심은 늘 뜨겁다. 비록 뚜렷한 정치색을 입지 않았어도 미래지향적이고 상호발전적인 ‘국가’의 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간과 세월을 입은 어른의 책임은 지금 그리고 미래의 세상을 건실하게 지켜내야 할 역할의 충실함에 있다. 그러니 점점 입을 닫는 국민들이 많은 사회가 무서워진다. 세상을 밝히던 불빛이 하나씩 꺼져가고 있는 세상이 온통 암흑에 휩싸이게 될까봐 점점 두려워진다.     


·너도 나도 네거티브

이번 20대 대선은 좀비들의 싸움판을 방불케 했다. ‘네거티브’공략을 필두로 내세워 서로의 비리를 캐내고 비판하는 사이, 대선주자들과 그의 부인들은 금세 물어뜯긴 좀비로 변모하고 말았다. 입신양명하였어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새삼 목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완벽한 사람만이 세상을 이끌만한 재목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완벽의 기준이야말로 피상적인 이데올로기에 딱 들어맞는 명제이기 때문이다. 완벽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흠 없는 가정사, 공부의 열정도와 관련된 넘사벽 학벌, 건강한 정신적 신체적 조건, 건전한 성인식 등 모든 이데올로기의 조건은 정치인이 되기에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정치인은 과연 있었을까? 단연코 없다. 바라서도 안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므로, 부족함과 결핍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한 부족에도 ‘노력’과 ‘성실’ 그리고 ‘청렴’과 ‘신의’를 갖추는 자라면, 분명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정치인을 힘껏 응원하는 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다. 힘껏 응원하고 싶은 순간은 과연 언제쯤 찾아오는 것일까. 입을 닫은 국민들이 하나같이 한 목소리를 내어 유일무이한 어느 ‘정치인’을 힘껏 응원하는 그 시간은 과연 오기나 할까.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선거 공략에서 중요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치부된 것은 단연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전하게도 공(空)의 ‘말’을 믿어주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은 환기해 볼만한 문제다. 환심을 사기위한 ‘말’들이 난무하는 선거에서 그러한 ‘말’을 신뢰로 프레임하여 지지해주는 국민들에게 그들은 최소한의 의리를 저버려선 안 된다. 그러려면 비록 공약(空約)이었을 지언정 공약(公約)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런 노력이말로 정치와 국민을 공생하게 하는 발단으로 삼을 수 있다. 

‘말’의 과오를 제대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정치는 그럼 사람들의 몫이 되어야만 한다.

더불어 민주당의 이재명 당선자의 공약의 하나였던 ‘김포공항 이전’을 두고 여전히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 힘은 이를 두고 ‘이재명의 경제허언증’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은 이를 두고 공약(空約)을 공약(公約)으로 만들기 위한 제동을 어떻게 걸지 지켜볼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대립 가운데, 국민의 힘 이준석 대표는 ‘콩가루’라는 표현으로 민주당을 직격하기도 했다. 그의 전언은 이러하다.

“(민주당은)콩가루다. 오늘은 콩가루가 더 세분화된 것 같다.”

그의 말은 비판인가, 비난인가. 비판의 사전적 정의는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비난의 정의는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난은 제 감정이 우악스럽게 표출된 의견 표명인 셈이다. 공적이고도 합리적이어야 할 정치공간에서 감정을 내세워 대립하는 행태는 여간 어울리지 않는다. 

비판은 두 진영의 의견 대립에 있어서 필수적이고도 양질의 의견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비판의 상호작용으로 성장이 촉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판을 하는 자는 적정한 근거와 논리를 내세워야 할 것이고, 비판을 듣는 자는 제 잘못을 인지하고 겸허히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와 같은 비난의 발언을 서슴지 않게 듣게 되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선거에 참여한 정치참여자들 역시 그 같은 비난을 여전히 행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네거티브 공세’라고 단언한다. 네거티브 공세는 검증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한다. 정치 후보자의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네거티브 공세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발전할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도 무수한 검증이 네거티브 공세로 이뤄졌고, 마타도어를 양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지만 후보자에 대한 긍정적 확신이 생기고 그것이 곧 유권자의 표로 이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선거에서는 네거티브 공세를 명확한 기준을 내세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가 비판이고 어디까지가 비난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면, 입을 닫고 있는 국민들의 표정은 더욱 싸늘하게 굳어지게 될 것이다. 그뿐이랴, 비난은 또 다른 비난을 낳게 되어 결국 정치계의 자정작용이 마비되고 말 것이다.     


·이미지에 미치다

이제 세상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그와 같은 분리가 가능하게 된 것은 조작된 이미지가 하나의 표상으로 출현하는 시대가 된 탓이다. 이제는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보여지지 못하면, 즉 눈으로 보이지 않으면 진리도 거짓이 된다. 그래서 ‘보여주기’에 혈안이다. 남보다 좋은 차, 좋은 시계, 좋은 옷, 좋은 가방, 좋은 집 등등 표면적인 외형에 집중하며 온 관심을 쏟아붓는 시대다. 그러한 이미지에 충실해지면 나를 따르는 팔로워가 생긴다. 팬덤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날, 팬덤의 영향력은 가히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팬덤의 강력한 파워가 세상을 이끄는 지경에까지 다다랐다. 그렇다보니 누구나 팔로워가 생기길 원하고, 누구나 보여주기식 이미지에 치장하느라 분주하다,

날마다 김건희 여사의 보여주기식 사진의 업로드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그녀의 팬덤층 역시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영부인의 파워가 시대적 흐름을 타고 다양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녀가 입는 의상, 가방, 신발, 헤어스타일까지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단시간 내에 품절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걸 아는 것인지 즐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사가 찍힌 사진이 인터넷 공간 안에서 계속해서 업로드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公約)의 하나였던 ‘민정수석실 폐지, 청와대 인력 30% 감축과 함께 제 2부속실 폐지’가 이윽고 공약(空約)으로 전락되어버렸다. 6월 2일자, 김건희 여사의 일정 및 메시지를 관리하는 ‘배우자팀’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영향력이 커져버린 김건희 여사의 팬덤을 이용하려는 것인지 사뭇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젠더와 갈라치기

오늘날 대두되는 정치적 이념의 이분법적 시각은 ‘젠더’의 영역에까지 확산되었다. 이제는 빨강이냐 파랑이냐의 1차적 갈라치기에 이어 남자냐 여자냐의 2차적 갈라치기로 분열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대의 분열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민주당은 ‘개딸’이라는 기표를 설정하여 정치적으로 그들을 공략했다. 여기서, ‘개딸’의 의미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20대~30대 여성들을 말한다. 또한 ‘개혁의 딸’이라는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6·1 지방선거에서도 '이대남'(20대 남성)과 '이대녀'(20대 여성)의 지지 후보가 뚜렷하게 나뉘었다. 젊은 남성들은 국민의 힘을 지지했고, 젊은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 간극은 석달전 대선 때보다도 더 벌어졌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발표한 연령대별 지지 정당(전국 기준)을 보면 20대 이하 남성의 65.1%가 국민의힘 후보를, 20대 이하 여성 66.8%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0대에서도 남성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58.2%, 30대 여성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56%로 각각 과반을 넘겼다.(출처:연합뉴스)

이 모든 양상은 선거에서 비롯됐다. 나라를 책임지고 이끌어줄 한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국민을 양분으로 분열시켜, 지지층을 기반으로 집중적인 공세를 이룩했다. 한 진영은 ‘승리’를 일궈냈고, 또 다른 진영은 ‘패배’를 맛봤다. 승리의 깃발을 든 국민의 힘은 권력을 쥐었고, 패배의 깃발을 꽂은 민주당은 무릎을 꿇었다. 이 모든 양상이 생과 사, 삶과 죽음의 인생과도 비슷한 결을 보인다. 삶도 치열하게 투쟁하여 쟁취된 것들로 연장되 듯 선거도 그러한 모양새다.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 생과 사가 극명하게 나뉘는 살벌한 전쟁터가 정치인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보수는 비리로 멸할 것이고, 진보는 분열로 멸할 것이다.’ 

아, 이제는 멸(滅)의 시대가 펼쳐질 것인가. 조마조마한 가슴을 움켜쥐며 성쇠(盛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불교의 근본 원리에서 말하는 멸,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인 그 ‘멸’의 시대가 도래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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