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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경 Jul 03. 2023

관계의 잘못

잘못 꿰인 첫 단추

출처:www.pexels.com


무엇 하나 맞지 않는 사람과 결혼의 연을 맺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들. 맞는 사람과 사는 것이 뭔지 모르니 그 과정이 어땠다고 감히 평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무참히 누르고 다듬어서 지금까지 견뎌왔다는 사실이다.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기엔 내가 너무나 힘없고 가엾은 존재라서 나는 그런 나를 날마다 채찍질해가며 살아왔었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그들의 선에 나란히 서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자리가 버거웠다. 시시때때로 그들이 거친 물살로 내 마음을 뒤엎거나 무너트릴 때마다 행여 내 자리를 잃을까 휩쓸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거짓된 웃음을 장착하고 나를 숨기며 살아왔다.


그는 제 식구와의 시간을 갖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는 보고 싶지 않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일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잦은 시간을 공유해야만 하는 억지스러운 관계들로 내 마음이 갈수록 생채기가 났던 모양이다. 때때로 마주해야 하는 그들과의 대면 자리가 고역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고통의 순간인 것을 그는 아는 걸까. 알 길이 없다. 내 속을 내 마음을 헤아리는 진정한 반려자였다면 애초에 내게 그런 상처를 주지도 않았거니와 나를 위해서라도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애써왔을 테지.


벌써 십 년이 넘었지만 나는 잊히지 않는다. 아니, 잊지 못한다. 세상에 태어나 극도의 비인간적인 모멸을 당해내야만 했던 그 숱한 사건들이 내 뇌리에 깊이 박혀 떠나질 않는다. 그런 그들과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이 현실도 이제는 너무 벅차고 힘이 든다. 그에겐 자신의 가족이 한 짓들이 아무렇지 않게 기화되어 감정의 흔적조차 한 줌 남아있지 않겠지만, 나는 남이기 때문에 그때의 흔적이 이미 여기저기 깊게 침착되어 나를 계속해서 물들여놓는다. 그에겐 지워진 과거일 뿐이지만 내겐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가 되고 만다.

그래선지 마주할 때마다 그의 가족들을 향한 내 감정은 미친 듯이 파도를 친다. 그때의 모멸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초라함, 날 벌레보듯 바라보며 자멸을 바라는 눈빛, 등 뒤에서 나를 흉보면서 비웃는 웃음소리, 비참함, 그 같은 능멸의 시선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늘 죄인이 된 것만 같은 나의 죄스러움이 자꾸만 새 나와 다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다시 그때의 내가 된 것 같이 견딜 수 없는 감정들이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 앞에서 여전히 당당하다. 한시도 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말 한마디에 온갖 우쭐함을 가득 담고 내게 준 상처의 말은 깡그리 잊은 채 나를 위해 바람 한번 막아줬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운다. 역시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래도 귀감이 될 만한 한 구석은 있기 마련이라고 나는 날마다 나의 노화를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을 마주하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점점 더 얄궂어지는 그들이 이제는 몸서리 칠 정도로 너무 싫다. 저들과 가족이라는 연대를 맺어야만 하는 내 존재 자체가 싫어질 정도다. 한때는 잘 지내려고 과거를 잊은 척도 해보고 애써 웃어가며 나를 억눌러 봤지만 그런 애씀이 다 소용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더는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그들 앞에서 내가 굳이 당당해야 할 이유도 없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 시간을 견뎌야 할 필요도 없다. 나를 못마땅해하는 그들 앞에 단지 마주 보고 서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한 궤도를 벗어나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서 벗어나 이제는 나 스스로의 답을 구하며 나로서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절실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더 늦지 않게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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