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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려라호야 Jul 28. 2023

낭만OS 두번째 이야기<진료실로 오세요>

진료실의 여러  사연

OS: Orthopaedic Surgery :정형외과

 

"선상님! 나 안 죽고 또 왔어"

하하하 웃으며 들어오시는 오 00 할머니시다. 1년 만에 와서 반갑다는 인사다. 원장님도 허허허 웃으신다.

"내가 안죽으니께 선상님도 또 요렇게 다시 보고 좋네요~잉. 아이고 얼른 죽어야 허는디 죽지도 않아. 자식들 고생만 시키고 그라네...."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

"이~잉 무릎하고 허리하고....."

한참을  이야기하며 진료를 보신 할머니는 일어나  나가면서 쿨하게 한마디 던지신다.

"근디 선상님 약 좀 좋은 걸로 주셔. 돈 걱정하지 말고  아조 좋은 걸로...."

얼른 죽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세계 3대 거짓말 중 하나임이 밝혀졌다


"선생님! 쥐약 타러 왔어요. 쥐약 좀 주세요"

"아 쥐약요? 얼마나 드려요?"

"한 2주 분만 주세요"

"네 쥐약 2주분 드릴게요. 드시고 또 나오세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다. 병원에서 쥐약을  먹으라 하다니. 놀라지 마시길. 여기서 말한 쥐약은 근육에 쥐가 날 때 먹는 약을 말한다. 척하면 척  알아 들어야 한다.


"선생님 이모티콘 처방받으러 왔어요"

"아 이모티콘이요?  얼마나 드려요?"

"많이 주세요. 오기 힘들어요"

"그러면 세 달분 드릴게요. 꾸준히 드셔보시고 또오세요"

'아이고 많이 주시네. 감사합니다"

카톡 이모티콘도 처방 해주는 병원이다. 여기서 이모티콘이라 함은 무릎 연골 영양제로 쓰이는 '이모튼' 이란 약을 말하는 것이다.  오실 때마다 발음이 헷갈리는지 자꾸 '이모티콘'이라고 하시는 어머님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 원장님 척하면 척이다.


여성스러운 패션을 즐기는 80대 할머니가 계신다. 진료받으러 오실 때마다 롱 원피스  패션을 고집하신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브래지어를 안 하고 오시는 경우가 많고 우리들도 으레 그러려니 하는데 굉장히 민망한 날이 있었다. 진찰을 하기 위해 겉옷을 벗는 순간  눈앞에 망사  원피스가 보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상태의 망사 옷을 상상해 보시길....민망함은 우리들의 몫이다.


반바지를 입고 오는 중년의 남자 환자분을 진찰할 때도 민망한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처럼  타이트한 팬티를 입는 게 아니라 헐렁한 사각팬티를 입는  어르신들이, 겉에도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올 경우다. 무릎 주사를 놓고 약이 흡수가 잘 되도록  다리를 들어 올린 채 90도 정도 구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을 해야 하는데 이럴 때 못 볼 것을 볼 때가 있다. 얼른 눈을 돌려야 한다.


늙어갈수록 청력이 감퇴한다.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보청기를 하지 않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진료실 통역 담당은 우리다. 원장님과 환자분  사이에서 통역을 해야 한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처음 이 정도는 눈치로 알아듣고 대답하신다.

"어 내가 무릎이 구부려지지가 않아. 여기 여기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이쪽은 괜찮아. 바른 쪽만 쑤셔. 밤새 아파서 잠을 못 잤어"

"그니까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여기는 이렇게 부어있..."

이때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할아버지 귀가 있는 쪽을 향해 외쳐야 한다

" 할아버지!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큰소리를 알아들으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부족할 때가 있다. 할아버지 앞으로 가서 입 모양을  또박또박하며 말을 해야 한다.

"여기!-언-제-부-터 아-프-셨-냐-고-요?"


원장님은 어르신들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편이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말할 사람이 없으니 병원에 와서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몸도 아프겠다. 말 들어줄 자식도 없겠다. 차근차근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는 원장님을 만나면   고기가 물을 만나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럴 땐 중간에서 끊어 줘야 한다. 대기 환자가 없어 오래 진찰을 해도 되는 경우는 괜찮지만(사실 그런 적은 별로 없다) 대기실 가득 환자분이 있을 땐 우리 마음도 급해진다.  아픈 곳을 말하기 위해 저 멀리 옛날 옛날에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가 말을 잘라야 한다. 원장님이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하면 그때가 신호다.

"어머님 약 처방 해드렸으니 밖에서 안내해 드릴게요"

그러나  이런 말 따위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한 번 하고 세 번 네 번 당신이 만족할 때까지 해야 일어나신다. 룰이 있다.


아이와 함께 오는 보호자분들은 십중팔구 본인이 환자다. 아이가 아주 어리다면 모르지만 초등 이상 되고 자기표현을 할 줄 알면 본인이 상태를 말하게 해야 하는데 절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진찰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아이의 대변인이 된다

"어디가 아프니?'

"아 애가요 어제부터 발목이 아프다고 해서요"

"다쳤어?'

'네 어제 학교에서 농구를 했는데 삐끗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디가 제일 아파?'

"이쪽요 이쪽을 디딜 때 아픈가 봐요. 00야 여기 맞지?"

'여기 안쪽은 괜찮니?'

'네 00야 여기는 괜찮지?'

진찰을 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진료를  다 볼 때까지 아이는 한 마디도 못한다.

대한민국의 어머님들? 제발 아이가 본인의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우리 아이들 보기 보다 똑똑합니다.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가지가지 사건들도 많다. 오늘도 낭만 OS의 진찰실은 바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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