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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려라호야 Aug 05. 2023

낭만OS -3편 <주사실로 오세요>

주사는 언제나 무서워!

OS: Orthopedic Surgery- 정형외과

뾰족한 바늘만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해진다. 주사를 맞지도 않았는데 벌써 통증이 온몸에 전해온다. 날카롭게 살을 파고 들어가는 찰나의 아픔, 극강의 공포가 나를 지배한다.

000님! 주사실로 오세요~

호명하는 소리에 환자분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뉜다. 좋아하는  쪽과 싫어하는 쪽으로. 주사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있을까마는 연세가 있으신 환자분들은 통증을 없애기 위해 주사에 많이 의존한다. 주사 맞으러 들어오시라 하면 얼른 들어오신다. 반대로  젊은이들은 흠칫 놀라며 억지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주사는 먹는 약보다는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훨씬 빠르기에  통증이 심하면 쓰는  편이다.

정형외과에서 쓰는 주사제는 대부분 진통소염제와 항생제다. 둘 다 약이 들어갈 때 많이 아프다. 하루에 보는 외래환자 수는 대략 110~120명 정도고  그중 주사를 맞는 환자는 약 40~ 50% 정도 된다. 주사실에 들어온 환자분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내보이면  골반을 기점으로 주사 부위를 측정하고  신중하게 놓는다. 근육주사를 잘못 놀 경우 신경손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며 주사를 놔야 한다. 혈관주사 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엉덩이 근육 주사다. 주사를 놀 때마다 자연스럽게 행동하지만  늘 긴장된다.

근육으로 들어가는 주사제의  양은 1cc~2cc 정도다. 일반적인 속도로 주입하는 약과 비타민제나 호르몬 제일 경우 주사액의 농도가 진해  아주 천천히 주입한다. 똑같은 주사를 매일 놔도 어떤 환자분은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고 어떤 환자분은 너무너무 아프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주사를 놓는 스킬의 문제인지 환자분이 고통을 참는 단계의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다. 오랫동안 주사를 놨음에도 풀리지 않는 문제다. 어쩜 둘 다일 수도 있고.

주사를 놀 때는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드러내야 하는 민감성이 있다. 환자들이나 우리들이나 민망하긴 마찬가지다. 매우 짧은 순간에 이뤄지는 행위지만 주사라는 특성상 임팩트가 강하다. 바지를 조금만 내리려 했는데 훌러덩 무릎 아래까지 내려간 적도 있고, 주사 부위를 어느 정도는 오픈시켜야 찌를 수 있는데 옷을 잡고 절대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젊은 남자분들 중 주사를 처음 맞는 환자가 종종 그런다. 그럴 때는 자! 바지 쫌만 더 내릴게요 하면서 확 내려 버린다. 봐주는 건 없다. 부끄러움은 너의 몫이다

주사를 맞는 자세는   침대 위에 엎드리거나 서서 맞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침대에 엎드려 맞는 게 가장 안정적인 자세지만 신발 벗고 눕고 일어나고 시간이 걸리니 대부분 서서 벽을 보고 맞을 것을 권한다. 벽을 봐야 하는데 가끔 내 쪽을 향해 서 있는 경우도 있다. 바지가 내려가 있는 엉거주춤 자세로 나를 향해 서있는 모습이라니... 초창기 시절엔 많이 놀랬지만 지금은 하도 겪어서 자연스럽게 몸을 벽으로 돌려준다. 노프라블럼이다.

주사실에서 생겼던 에피소드 중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엉덩이 주사를 놓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중년의 남자 환자분이 바지를 내리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빨리 놓고 나가서 일을 봐야 하는데 아무리 바지를  내리라 해도 내리지 않고 머뭇거린다. 시간을 지체하니 짜증도 좀 나고 왜 이러나 싶어 바지를 내리셔야 주사를 놓을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으셨다. 뭐지 이 눈빛은?  왜 그러시는 거지? 혼자 당황하고 있는데  

"저기 간호사님 나 흉보지 말아요"

"네? 무슨 흉요?"

"사실은 내가....."

사연인즉 - 본인이 좀 민망한 팬티를 입었단다. 그 이유가 점을 봤는데 거기서  화려한 속옷을  입어야 좋다고 했단다. 주사 맞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서 입고 온 거니   흉보지 말아 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쿨하게 괜찮다고 하고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나는 쿨하지 못했다

아저씨의 팬티는 빨간색 망사 팬티였다. 

좀 쇼킹했던 그날의 일은(아저씨가 흉보지 말라 했지만)  두고두고 무용담처럼  후배들에게 전해지게 됐다. 중년의  아저씨는 지금도 화려한 속옷을 입고 다닐까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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