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수의 여러 형태
OS: Orthopedic Surgery: 정형외과
출근하면 우리만의 루틴이 있다. 접수, 청소, 차, 기구 이 네 가지 분야를 각자 담당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분야를 나눈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지 손발이 척척 맞게 아침 루틴이 돌아간다. 아침 접수는 수경이가 담당이다. 차분한 말투와 꼼꼼함이 접수에 잘 맞는다. 청소는 윤희가 담당이다. 각 윤희라 불릴 정도로 정리 정돈을 잘한다. 딱 그 자리에 맞는 상자를 찾아와 모든 물건을 병적으로 각을 맞춰 넣는다. 걸레질도 각 잡고 예술적으로 한다. 군인 남편의 영향인가? 차는 내가 담당한다. 커피와, 옥수수와 무를 넣은 차를 만든다. 커피는 그날그날 갈아서 커피 메이커에 내려 먹는다. 선호하는 커피는 케냐와 예가다. 옥수수와 무도 직접 볶아서 파는 걸 먹는다. 뜨거운 물에 우려 하루 종일 물 대신 먹는다. 기구는 혜영이가 담당이다. 원장님 실과 처치실 기구의 위치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소독하는 역할을 한다.
아침 출근과 동시에 옷을 갈아입고 우리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좁은 공간, 짧은 동선임에도 불구하고 스치듯 지나가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근무 시간을 맞이한다.
오전 근무는 9시부터 1시까지다. 진료실에 1명 접수실에서 3명이 일한다. 접수실 3명은 접수, 주사, 처치를 담당한다. 밀려드는 환자를 웃는 얼굴로 응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간의 개념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접수할 때 처음 묻는 멘트는 '오신 적 있으세요?'다. 환자분들의 대답은 '처음입니다' '안 왔어요' '온 적 있어요' '어제 왔어요' '좀 됐어요'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대답에 따라 우리들의 포지션은 달라진다. 처음 오는 환자분에겐 초진 접수장을 재진인 경우는 재진 접수장을 준다. 재진인 경우는 그냥 물어서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차트를 쓰니 이름과 주민번호로 조회해서 접수하지만, 예전에 썼던(10여 년 전) 종이차트는 손글씨로 일일이 적어야 했다. A4 용지 크기의 약간 두꺼운 차트에 인적 사항을 적고 접수 한 뒤 진료 기록을 적는다. 재진 환자 차트를 찾을 땐 생년월일로 정리해 놓은 차트를 찾아야 한다. 이때 환자들이 언제 왔느냐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정확하지 않은 시점을 말하면 십중팔구 계속 찾기를 해야 한다. '얼마 안 된 거 같은데요'라는 말을 기준으로 찾을 시 1년 안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2년 3년 이 지났는데 '얼마 안 된 거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어르신들의 기억은 믿거나 말거나 일 때가 많아서 말하는 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얼마 안 된 것 같다는 말에 믿고 찾다 보면 연도별로 계속 찾아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마다 '얼마 안 됐어요'의 기준은 한 달일 수도 있고 1년일 수도 있고 3년일 수도 있다. 또 '온 지 오래됐어요'의 기준도 다 다르다. 3 달일 수도 1년일 수도 5년일 수도 10년일 수도 있다. 시간의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이라 딱 맞는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각자 생각한 대로다.
초진 환자들이 쓰는 접수장을 받고 화가 날 때가 종종 있다. 글씨를 거의 싸인 수준으로 흘겨 쓰는 경우다. 접수장을 받아 들고 한참을 쳐다보며 암호해독을 해야 한다. 하다 하다 못하면 다시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면 그것도 모르냐는 듯 화를 내며 알려준다. 누가 화를 내야 하는지 헷갈린다. 이름을 한문으로 써주는 어르신도 있다. 세종대왕님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 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쓰라고 분명 한글을 만들어 주셨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자랑인가? 읽을 수 없으니 다시 물어봐야 한다. 우린 또 무식한 것들이 돼버린다. 글씨를 깨알같이 써서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일 경우가 많다. 작게 써도 너무 작게 써서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다.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병원에 필요한 인적 정보는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다. 개인 정보 중 4가지 사항을 적어야 한다. 간혹 처음 왔는데 주민번호를 적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주민번호가 필수 사항인데 절대 알려주기 싫은 듯 왜 적어야 하냐 요즘은 주민번호 알려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하면서 적기를 거부한다.적기 싫어 화내고 간 사람도 있다).그럼 의료보험이 안되는데 괜찮냐고 하면 마지못해 거칠게 적어준다. 우리도 주민 번호 알고 싶지 않다. 알아도 아무짝에도 쓸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가지가지 사건들도 많다. 낭만 OS는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