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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영 Nov 05. 2019

마크툽[Maktub]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대학교 교수님을 만나 밥을 먹는다. 이렇게 만나기 시작한 것은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하시고 난 후부터다. 퇴임하시던 날 꽃바구니를 선물로 드린 적이 있다. 취업을 한 선배와 함께 드렸는데, 그 선배에게는 담당 교수님이었다. 나는 내 담당교수님도 아니었지만, 당시 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며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저녁시간 학과 교수님들이 모두 모인 식당에 들어가 꽃바구니와 편지를 드리고 나왔다. 교수님은 내 이름도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았다.


 얼마 후,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수님이 그때 너무 고마웠다고, 연말인데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그렇게 맛있는 소고기를 얻어먹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해서 연말이나 연초면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수님이 밥 사 주신다고, 한번 보자고.


 저녁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는 매번 교수님이 아끼시던 제자들이 몇몇 더 와있었다. 그래서 밥을 먹다가 장난스레 "교수님 저는 제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별안간 '마크툽'에 대해서 아냐고 물었다.


 마크툽은 아랍어로 '운명'이란 뜻이라고 했다. '기록된, 섭리'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체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씩이라도 꼬박꼬박 만나는 걸 보면 이미 이렇게 만나게 되어있는 인연이라고 하셨다. 인연에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그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다고 하셨다.


 집에 돌아가는 길 '마크툽'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운명이라는 게 존재할까?' 운명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한편으론 항상 존재하길 바라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운명의 인연이 있다고 한들, 아무 노력 없이 그 관계가 지속되길 바라는 건 미련한 짓이다. 반대로 큰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자주 보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인연이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관계가 멀어졌을 때 그 이유를 계속 나에게서만 찾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물론 나의 실수나 행동으로 멀어져 버린 관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우리는 종종 과거 자신이 내린 선택에 후회를 한다. 지금 상황이 과거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모두 그렇게 됐다고 믿으며,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아간다고 정말 다른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보다 나았을까? 하고 물어봤을 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당시 그런 선택을 한 나는 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거다.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하루에 몇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소하게는 주고받는 메시지부터 어느 식당에 가서 어느 메뉴를 먹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인연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선택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받고, 때로는 나의 의사가 아닌 상대방을 위한 선택들을 계속해서 하곤 한다. 그러한 행동으로 가깝게 지내더라도 스스로를 속이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 처음부터 나답게 행동할걸'. 반대로 멀어 저도 마찬가지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어차피 내가 어떻게 행동한들 멀어질 사람은 멀어지고, 곁에 머물 사람은 머문다. 그러니 나답게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이 나답지 않게 행동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노력은 하되, 멀어진 인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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