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수 없을 것
사는 게 바빠서 연말에 겨우 한 번 만나는 오래된 내 친구들. 이렇게나마 만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들 한다. 결혼하고 애 키우고 일하는 동안에는 정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애를 낳고 키운 나로서는 이제는 친구들한테 좀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일 년 내내 묻어 두었던 관심을 작은 립밤 선물 하나에 담아 건넨다. 립밤만 내밀기가 뭣해서, 작은 상자에 충전재를 넣고 예쁘게 꾸몄다. 그리고 소원했던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고자 친구들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어 내었다. 친구 하나하나가 풀어 놓는 이야기 보따리 안에는 좋은 소식도, 힘든 소식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과하게 내밀지 않는다. 그만큼 소중한 만남인 것이다. 좋은 소식에 박수를 치고, 힘든 소식에 위로를 건넨다. 이야기를 풀어 놓는 당사자 역시 인내와 고민의 시간을 이미 많이 가졌고, 우리가 없는 동안 지켜 준 사랑들 덕분인지 이미 차분함과 감사, 믿음을 충만히 지니고 있었다.
난 어른스럽고 성숙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우린 어렸고 뭘 몰랐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함께 있지 못해 슬퍼하기보다는 친구가 자신의 길로 나아가는 걸 응원했다. 각자의 길을 선택한 뒤에도 우리는 종종 만나서 커다란 그릇에 담긴 팥빙수를 함께 퍼 먹고, 대학로를 걷고,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맥주를 마시고,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고궁을 걸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 줄 알았을까?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좋겠어."라고 친구가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니?" 하고 묻자,
"아니!" 하고 친구들이 다투어 외친다.
"미래를 미리 안다면 과거랑 다름이 없지 않을까?" 나는 말했다.
"미리 안다고 해도 과거랑은 다르지." 친구가 말했다.
'과거는 미리 알고 있는데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미래도 과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속으로 항변했다.
'미래를 모르기에 살아보고 싶은 것 아닐까?'
미래가 다 밝혀져 있다면 꿈이란 꿀 수도 없을 것이다. 내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창할 것 없지만 그래도 핑크빛을 띤 꿈이다. 시간이 없어 우린 서둘러 작별인사를 했다. 내 꿈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들리고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