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어릴 적의 원대한 꿈은 어느덧 희미해지고
조카의 꿈이 꽤 크다는 걸 알고 좀 놀랐다.
나도 어릴 때 꿈이 컸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차로는 집안 사정이 받쳐주질 못했고, 이차로는 나도 꿈만 꿨지 그리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집에서 무슨 외교관이 되는 과정 같은 것에 신경이나 썼을까? 막연했던 대학 때가 되어서야 인터넷으로 과정이나 절차를 한번 찾아봤을 뿐이었다.
넘어야 하는 문은 높았고, 실력도 안 따라줄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영어조차 제대로 못 했는데 뭘. 결국 나는 현실적인 꿈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것은 소설책을 읽는 것이었으니, 출판사를 들어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공대생이었던 나는 출판사에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당시 인터넷 카페에 편집자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열심히 보낸 끝에, 나는 졸업과 거의 동시에 출판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교관은 못 돼도 외교관 비슷한 일에 대한 열망이 컸는지, 출판사에서 해외 도서의 판권 수입과 관련한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내가 기대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팔릴 만한 외서를 찾아내는 일, 그를 위해 해외 도서전을 다니는 일, 계약과 관련된 일들을 하는 것, 에이전트와 편집부 사이에서 부대끼는 일은 나랑 맞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서 업무포지션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에이전시 업무 말고 편집 업무를 맡고 싶다고. 그렇게 나는 편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직을 해서도 나의 경력은 여전히 편집자였다. 당시 젊어서 그런지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스테디셀러도 기획했다. 지금도 그런 경험으로 계속 조금씩이나마 먹고살고 있으니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에 만족한다.
오히려 어릴 때 유학을 갔더라면, 대학때 외교관이 되는 길을 더 적극적으로 알아봤더라면 인생이 더 고달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랬을까. 당시 사촌동생이 유학을 가서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잘 살아가고 있으니, 나도 그냥 잘 살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지금의 내가 사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하지만 어린 청춘의 꿈은 나보다 훨씬 강한 것 같다.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설득하며 스스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멋지다 내 조카!
하지만 쉰이 다 된 나는 착한 남편 만나서 이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소소한 일을 하고, 부모님 곁에서 살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다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