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슬픈 호러소설
중반부부터는 갑자기 슬퍼졌다. 호러 책을 읽으면서 슬퍼지다니. 원래 이런 건가? 범죄물은 읽어도 유령물을 읽지 않는 내가 이 책을 듣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적산가옥'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어제 썼듯이 그 가옥은 내게 좀 친근했으므로.
이야기 앞부분에서는 적산가옥에 사는 일본인 거부의 외아들, 유타카의 잔인한 행동에 이마가 다 찌푸려졌다. 그 소년은 왜 자해를 하고, 동물을 잡아 뱃속을 헤집어놓는가. 공감능력이 없는 싸이코패스인가. 주인공 준영은 그 소년이 무섭지 않은가? 너무 섬찟했다.
그런데 중반부부터는 그 소년이 말할 수 없이 가여워졌다. 어딘가 초연한 듯도 하고, 누구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주인공 준영처럼 그 소년을 돌보고 싶어질 만큼.
소년은 죽어서도 그 가옥에 남아 준영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러한 장면은 꼭 한이 서린 귀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준영을 지켜주려는 수호신처럼 느껴져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도 그런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있었으면 할 정도였다.
잔인하고 슬프고 안타깝지만 담담히 이어가는 이야기 속에는 아름답고 고운 선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준영의 증손녀가 겪는 이야기는 좀은 다른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다. 준영의 이야기는 호흡이 길고 침착하며 신비롭기까지 한데, 그건 아마 묵직한 역사적 배경에 기대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증손녀의 이야기는 어딘가 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흥미롭게 빠져들어 읽었다. 내 인생 첫 호러소설이 이 작품이었다니, 난 참 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