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시간 여행

오늘의 일기

by 정이나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데 남편이 갑자기 산에 가자 했다. 산 아래 저수지 둘레길을 걷자면서. 늦어서 주차장이 꽉 찼을 텐데 걱정하면서도 서둘러 준비를 해서 나갔다.


갔더니 과연, 주차를 기다리는 차들의 순서가 길었다. 우리는 주차료를 더 내기로 하고 근처 대학에 차를 댔다. 그 대학은 20여 년 전에 원서 내러 왔었기 때문에 조금 알고 있었다. 하하, 26년 되었나? 당시에 운동장을 지나서 원서를 내러 갔었는데... 결과적으로 합격은 했으나 지원한 과가 너무 허무맹랑한 과라서 등록을 포기했다. 그 과는 기계공학과였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그냥 공대도 아니고 기계공학과라니. 당시에 그냥 성적 맞춰서 아무 과나 원서를 넣은 거다. 그땐 인터넷도 잘 없어서 정보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랬다.


나는 온 김에 그 '운동장'을 찾아보자 했다. 학교가 하도 넓고 언덕이 많아서 좀 헤매다가 결국 찾았는데, 당시 흙운동장이었던 것이, 인조잔디구장으로 바뀌어 있다. 세월이여~~


잠시 옛생각에 잠긴 뒤 원래 목적지인 저수지 둘레길로 향했다. 20년 전에 산, 허리에 매는 백을 차고서 흔들흔들 걸어가는데, 단체관광객 아저씨들이 갑자기 나를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했다. 나는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봤는데 아니었다. 아저씨는 자기 핸드폰을 건네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여태, 사진 잘 찍을 만한 사람을 기다렸시오."


하면서 얼른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서 포즈를 취한다. 아저씨들만 한 10명이 넘었다.


사진을 잘 찍는 편은 아니나, 그래도 남편의 솜씨보다는 나았기에, 포토존의 네모 안에 깔끔히 들어오게 사진을 3장 연달아 찍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과 얼른 내뺐다. 나는 이런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인 거다.


둘레길을 걷는데, 20년 전과는 너무 다르다. 이곳 역시 바뀌었다. 당시는 흙바닥이라 질고 그랬는데, 지금은 길을 다 데크로 꾸며 놓았다. 걷기가 좋고 유쾌했다. 그런데 우리 뒤로 아까 그 아저씨들 무리가 시끌벅적 따라오고 있어서,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 한 번씩 발걸음을 빨리 했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여행온 듯 즐겁고 새로웠다. 점심으로 동태곤이탕을 먹었다. 두 내외가 과식하지 않고 꼭꼭 씹으면서 딱 알맞게 먹고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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