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을 앞두고 후회와 결심 중

(소개팅 아니고, 비즈니스 미팅임)

by 정이나

갑자기 전화가 와서 내일 모레 미팅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파트너 출판사 사장이 온다는 것이다. 아니, 몇 달 전에 왔기에 앞으로 일 년 동안은 미팅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영어 공부도 안 하고 놀고 있었는데) 또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이었다. 사실 중개 에이전트가 있어서 통역은 다 해 주니까 내가 뭐 할 것은 없지만, 꼭 말을 조금이라도 해 보라는 에이전트와 대표님의 무언의 기대(?) 때문에 좀 곤란한 중이다.


몇 달 전에 갔을 때도 뭐, 통역이 2명이나 있으니 난 그냥 한국말로 하면 되겠지, 하고 갔고, 비즈니스 관련은 다 한국말로 했다. 그런데 꼭 해 보라고, 해 보라고 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뭐, 영어회화 체험도 아니고.)


"영어로 말한 지 수년이 되어서 잘 못 해요." 라고 영어로 말했다.

"오, 억양이 맘에 드는데요? 영어 어떻게 배웠어요?" 라고 미국 사장이 영어로 말했다.

"글로벌 앱, 스*으로 공부했어요!" 라고 영어로 말했다.


갑자기 무슨 '스*' 광고 같이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위기를 넘겼더니만, 또 미팅이라니! 영어와 담 쌓고 사는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조금 전 AI랑 대화를 좀 해 봤는데, 조금 하니까 글쎄 갑자기 '15분 남았음'이라고뜬다. 갑자기 김이 새서 집어치우고 피아노 레슨 준비로 연습을 좀 했다. 이번주는 너무하다. 미팅도 해야 하고, 지방도 가야 하고, 다녀온 뒤에 바로 피아노 레슨을 받아야 한다.


영어 공부해 봤자 쓸 데가 없어서 그만둔 지 십 년은 되었다. 그러길 잘했다. 가끔 가다 미국 사람하고 두 문장 말하려고 날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니까. '지금 이 정도의 영어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꾸준히 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못난 나를 바라본다.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 이 실력이면 내게 있어선 최고인 거야. 삶의 다른 면, 내가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일에 집중하자."


그래도 내일 하루 더 약간이라도 연습해야겠다. 딱 하루 정도, 그리고 미팅 당일날은 재미있게 이 상황을 즐겨 보자, 그런 다음 다시 루틴을 되찾자고 다짐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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