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의 질서
이름조차 입에 잘 붙지 않는 뉴델리의 빠하르간지. 그곳은 그야말로 혼돈의 중심이었다. 릭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 개, 소…….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갈 곳만 바라보며 돌진한다. 사이드 미러가 없는 오토릭샤나 자동차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고막을 때리며 여기저기서 날카롭게 울려대는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곳은 빠하르간지가 아니다. 평소 작은 소음에도 민감한 나는 처음에는 그 찢어지는 소리에 놀라 귀를 막으며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중에는 그저 카페의 배경음악인 듯 흘려듣게 되었다. 화장실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곳이 많다. 심지어 대로변 오픈 토일렛도 종종 볼 수 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인도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어요?”
인도가 좋았다는 내게 사람들이 묻는 또 하나의 단골 질문이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무질서함과 혼돈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언덕을 열심히 올라 등교를 하고 있었다. 교문을 지나는데 화가 잔뜩 난 학생주임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서있었다. 고개를 돌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들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거기 너!! 너 여기 와서 서봐!!”
그를 향해 걸어가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걸릴만한 것이 없었다. 교복 치마는 줄여본 적이 없다. 펄럭이는 행주치마처럼 넉넉한 품에 무릎을 덮는 길이였다. 흰 양말도 고이 두 번 접어 신었고, 머리도 귀밑 7센티를 넘지 않았다. 도대체 나를 왜 잡는 걸까 생각했으나 그의 앞에 설 때까지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학생주임은 나를 뒤돌아 서게 한 뒤 등교하는 아이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얘처럼 하고 다니란 말이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규율에 맞추어 사는 것에 익숙했다. 학창 시절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말들은 주로 반장, 부반장, 모범생, 장학생, 전교 O등 등이었다. 규칙에 의해 허락되는 것들만 하며 살아온 내게 그런 무질서한 풍경은 신세계였다. 부지불식간에 나는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질서와 규칙대로 돌아가지 않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신비한 나라.
“노 프라블럼!”
이 말 하나로 모든 것이 노 프라블럼이 되는 나라. 사실, 정말 ‘노 프라블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게 좋았다. 기차가 열두 시간 넘게 연착해도 “노 프라블럼!” 열두 시간 뒤에는 오는데 문제 될 거 없지. 버스기사가 갑자기 버스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친구와 이야기를 하러 가도 “노 프라블럼!” 이야기가 끝나면 돌아올 테니 문제없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 어찌 보면 미치도록 긍정적인 사람들. 모든 것을 문제없게 만드는 신비한 그들의 매력.
나는 자주 그 무질서와 혼돈이, 미치도록 긍정적인 사람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