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온 Feb 04. 2021

뉴델리가 아니라 올드델리!

비행기표 외에 한국에서 예약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야간기차 3등석 침대 칸. 기차는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한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 열한 시에 도착하는 열일곱 시간 삼십 분의 여정이다. 아, 물론 예정대로 도착한다면 말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하기로 유명한 인도의 철도망은 영국의 식민시절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네번 째로 긴 길이를 자랑하는데 총 육만 육천 킬로미터가 넘고 기차역 개수도 무려 칠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 기차가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저렴한 요금 때문에 인도 국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델리-자이살메르는 하루 한 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구간인데 간혹 좌석이 매진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혹시나 내가 원하는 날짜에 기차를 타지 못할까 봐 사전에 예매를 해두었던 것이다. 


인도 방랑기에서 짐을 찾은 뒤 부지런히 기차역까지 걸었다. 다섯 시쯤이었다. 30분이나 여유 있게 기차역에 도착해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전광판을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가 없는 게 아닌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스스로에게 침착해야 한다는 주문을 되뇌었다. 2층에 있는 고객안내센터로 갔다.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는데 기차가 없다고 말했다. 안내원은 나에게 말했다. 

"마담, 여기는 뉴델리 역이에요.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를 타려면 올드델리 역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이어 말했다.

"서두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아뿔싸. 기차를 탈 생각에 신이 난 나머지 델리라는 글자만 보고 정작 중요한 글자는 보지 않았던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뉴'냐 '올드'냐 그것이 문제였다. 안내원에게 "단야밧!!!"이라고 소리치며 부리나케 뉴델리역을 빠져나왔다. 역 앞에는 사이클 릭샤도 있고 오토릭샤도 있었다. 무엇을 탈까 잠시 잠깐 고민에 빠졌으나 결국 사이클 릭샤를 잡아탔다. 오토릭샤를 탔다면 더 빨리 갔을 텐데 고작 몇 푼 더 아껴보겠다고 그 급한 와중에도 사이클 릭샤를 탔다.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꽉 막힌 도로와 느림보 사이클 릭샤, 그 뒤에 앉은 나. 그날따라 무슨 행사가 있었던 것인지 원래 그런 길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금요일 저녁 6시 반쯤 양재 IC에서 신논현역으로 가는 버스에 탄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다 기차를 놓치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해서 10초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오토릭샤를 탔으면 벌써 도착했을까 생각하며 푼돈 아끼겠다고 비싼 기차 값을 날릴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이클 릭샤를 탄 나 자신을 원망했다. 


그러다 순간, 인도에 가기 전 마음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곳에 가서는 무슨 일이든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을. ‘인샬라,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나는 무교이다.) 이내 마음을 놓아 버리기로 했다. 

‘에잇 모르겠다. 기차 못 타면 그냥 내일 가지 뭐. 델리에 하루 더 있으라는 신의 계시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올드델리 역으로 가는 길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마른 체구지만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힘껏 페달을 밟아 목적지까지 달려주는 릭샤왈라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이 어느덧 올드델리 역에 도착했다. 무사히 시간 맞춰 데려다준 고마운 그에게 잔돈은 가지라고 말하며 나는 서둘러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이전 04화 인도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