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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Feb 07. 2021

밤기차의 인연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 것이. 플랫폼에 도착해서도 열차 칸을 찾으며 계속 달렸다. 인도의 기차는 마치 영화 ‘설국열차’와 같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여러 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제일 좋은 등급은 1A. 그다음은 2A, 3A, Sleeper(SL). 여기까지는 침대석이다. 그 아래 등급은 좌석인 CC, II, P, FC 그리고 입석인 General이 있다. 한국에서는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 일단 아무 칸에나 올라타서 기차 안에서 이동한 적이 많았다. 인도의 기차는 다른 등급의 칸으로는 이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탑승할 때 올바른 칸에 올라타야 한다. 내가 예매한 등급은 3A 침대칸이었다. 좌석을 거듭 확인하고 서둘러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다섯 시 이십 오분. 참으로 길게 느껴진 이십 오분이었다.

“휴…….”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무사히 탑승한 것에 희열을 느끼며 잠시 숨을 돌렸다. 순간 잊은 것이 생각났다. 밤 사이 마실 생수를 사는 것을 깜빡했다. 밖을 내다보니 다행히 마침 나의 열차 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점이 있었다. 얼른 뛰어가 생수 한 병을 산 뒤 다시 기차에 탑승하니 딱 세이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출발했다.    


3A 등급 열차의 한 구역에는 양쪽에 침대가 세 개씩 달려있어 총 여섯 명이 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낮에는 1층 침대만 펼쳐져 있고, 그곳에 소파처럼 앉아서 간다. 그러다 밤 시간이 되면 2층, 3층 침대를 내려 올라가서 자는 것이다. 낮에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있다면 2층, 3층 자리를 배정받은 사람은 눕고 싶어도 누울 수 없다. 그 날은 열차가 만석이 아니어서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이 한 구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공간에서 자이살메르까지의 긴 여정을 함께 하게 된 나머지 세 명은 휴가를 맞아 국내여행 중이라는 단란한 인도 가족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Namaste”

그리고 그 한 마디로 시작된 대화는 잠들기 전까지 이어졌다. 정부기관 공무원이라는 닐까말, 그의 아내 루미타 그리고 나를 디디(힌디어로 누나라는 뜻)라 부르며 따르던 나빈.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을까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처음이었다. 인도인 가족과 그리고 홀로 여행하는 한국인 여자애와 그토록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기차에 탄 순간부터 다음날 오후까지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갔다.


3A 열차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Sleeper칸에는 창문이 없다고 했다.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Sleeper 칸은 고려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도의 겨울이라도 밤에 달리는 기차는 추울 테니까. 3A 열차는 베개와 얇은 이불도 제공된다. 화장실 상태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인도에 가기 일 년 전 캄보디아에서 몇 주간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단련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인도에 간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늘 사전에 최악을 예상해본다면 심적인 충격을 다소 완화할 수 있다. 나는 그랬다. 거의 스무 시간 가까이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더러워서 사용하지 못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았는데 참 다행이었다. 화장실에는 더운 여름을 대비해 작은 선풍기도 달려있었다. 오물은 그냥 기차 아래로 떨어지는 시스템으로 보였다. 휴지는 물론 비치되어 있지 않다.


화장실에 다녀와 짐을 좀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낮에 웬저스에서 사온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역시나 특별한 맛은 없었다. 나빈 가족은 기차에서 파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우리나라 만두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납작한 스티로폼 용기에 넣어서 판매되는 볶음밥이었다. 닐까말은 내게 샌드위치로 저녁이 되겠냐며 볶음밥도 좀 먹어보라고 했다. 어느 나라나 아빠들은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볶음밥의 비주얼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한입 먹어 보았다. 괜찮은 맛이었다. 오히려 점심에 갔던 비싼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차는 중간중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기차가 어느 역에 잠시 멈추었을 때 나빈과 닐까말은 매점에서 파는 롤케이크와 과자를 사 왔다. 인도에 와서 처음 맛본 과자였는데 과자는 역시 맛없기가 어려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후에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과자도 하나 맛보긴 했지만.


잘 시간이 되어 2층 침대를 펼치고 올라가 누웠다. 기차 밖은 가로등도 많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고, 객실 내 불도 다 꺼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녀 피곤한 하루였다. 얼른 자고 싶었는데, 옆 구역에서 코를 심하게 고는 승객이 있어서 잠들기가 어려웠다. 다음에 인도에 올 때는 꼭 귀마개를 챙겨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겨우겨우 잠이 들었다.


"짜이~짜이~짜이헤(짜이입니다)~"

아침을 여는 짜이왈라(짜이장수)의 우렁찬 목소리에 눈을 떴다. 닐까말은 이미 내 것까지 네 잔의 짜이를 주문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나빈 가족에게 인사했다.

"굿모닝!"

"잘 잤어요?"

닐까말의 물음에 코 고는 소리에 늦게 잠들었지만 잠은 잘 잤다고 말하며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를 접고 나빈 옆에 앉았다.


짜이왈라는 미리 만들어온 뜨끈한 짜이를 주전자에 넣어와 종이컵에 따라준다. 식당이나 노점에서는 일반 종이컵 사이즈로 짜이를 판매하지만, 기차에서는 소주잔 종이컵 정도 되는 컵에 한 잔씩 판매한다. 기차에서 판매하는 짜이는 한 컵에 백원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닐까말이 건네 준 따끈한 짜이를 후후 불어 한 입 호로록 마셨다.

"오! 너무 맛있어요!"

잠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진하게 우러난 맛과 향이 정말 훌륭했다.

"하하 한잔 더 마실래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헤헤"

진정한 백 원의 행복이었다.


짜이는 영국령 시절 영국인들이 밀크티를 마시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찻잎이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우유와 설탕의 비율을 높이고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생강,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어서 판매하면서 지금과 같은 마살라 짜이가 탄생한 것이다. 원래 밀크티를 좋아하는 나는 짜이 맛에 푹 빠졌고, 그 날 이후 인도에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짜이를 마셨다.


짜이를 홀짝거리는 내게 닐까말이 물었다.

 “자이살메르에 가면 이제 뭐 할 거예요?”

그의 질문에 나는 아직 숙소도, 언제 무엇을 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그저 자이살메르에 간다는 것만 정했다고 대답했다. 나의 말을 듣더니 닐까말과 루미타는 힌디어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화를 마친 닐까말이 말했다.

“우리랑 함께 여행하는 게 어때요?”

나빈네 가족은 사막투어를 예약해 놓았다고 그곳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Sure, why not?”  

내가 함께 간다고 하자 나빈은 한껏 신이 난 듯했다.

"와, 우리 같이 재밌게 놀아요 디디(누나)!"

사막투어는 원래 가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자이살메르에 도착했고 나와 나빈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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