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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Feb 11. 2021

사막의 밤은 아름다웠다

자이살메르는 인도 북서부에 있는 라자스탄 주에 속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쯤 이랄까. 라자스탄의 도시들은 저마다의 색을 가지고 있다. 사막의 도시 자이살메르는 골드 시티라고 불린다.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된 도시 조드푸르는 블루 시티, 우다이푸르는 화이트 시티, 자이푸르는 핑크 시티라고 일컫는다. 각 도시에 도착해 조금만 걷다 보면 왜 그렇게 불리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뉴델리에서 하룻밤만 묵고 다음날 바로 자이살메르로 향하는 기차를 탄 것은 어서 빨리 사막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었다. 기차는 약속대로 자이살메르역에 도착했다. 비록 약속시간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무사히 도착했으니까 노 프라블럼이다. 자이살메르역의 건물은 골드 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사막의 모래빛이었다.


역에서 나온 우리는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현지인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보통 역이나 버스 터미널 근처의 식당들은 맛이 없을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편견이었다. 주문한 야채 커리와 난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나빈과 슈퍼에 갔다. 나빈에게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자 킷캣을 골랐다. 진열된 과자들 속에서 낯익은 빨간 봉지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름 아닌 초코파이였다. 킷캣과 초코파이를 하나씩 사서 나빈과 나누어 먹었다. 꿀맛이었다. 사실 성인이 되고 나서 초코파이를 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인도에서 보니 어찌나 반갑고 맛이 좋던지. 한국에는 너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일까? 인도 여행 후 다시 칠 년 동안은 초코파이를 한 번도 사 먹지 않았다. 그리고 칠 년 후, 두 번째 인도 여행에서는 또다시 초코파이를 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렌트한 차를 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서 소떼가 도로를 점령하며 걸어왔다. 족히 100마리도 넘어 보였다. '우와'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나와 달리 나빈 가족은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런 나를 보미소 짓고 있었다. 차를 잠시 멈추었다가 소떼가 다 지나가고 난 뒤에 다시 출발했다. 낙타 사파리에 가는 길에 우리는 근처의 한 사원과 폐허가 된 오래된 집터를 구경했다. 그 오래된 집터에서 나빈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아이들 세 명을 만났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는데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주변은 온통 사막과 폐허뿐이라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이 셀카를 찍자고 내가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리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어 보였다. 귀여운 녀석들. 비슷한 또래인데 전혀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곳을 나와 다시 목적지를 향해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드문 드문 보이던 한 두 그루 나무들도 사라지기 시작하고, 차창 밖이 모래 빛으로 가득해질 즈음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장소는 커다란 몽골 텐트였다. 여러 텐트 중 나와 나빈 가족이 하나씩을 차지했다. 텐트 안에는 나름 침대와 세면대, 화장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고 심지어 창문도 있었다. 역시나 열지는 않았지만. 사막의 모래 위에 작은 인디언 텐트를 치고 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의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훨씬 멋져서 마음에 들었다.  


간단히 텐트 안에 짐을 풀고 나오자 늠름한 낙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낙타의 얼굴은 웃는상이었으나 그 속은 알 수 없었다. 사막은 처음이라 몰랐는데 모래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모자가 없는 나를 위해 루미타는 하고 있던 스카프를 벗어 내 머리와 목을 감싸 주었다. 가도 가도 사막이었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를 찾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마실 물이 있었다. 낙타의 등에 올라 느릿느릿 전진하며 저물어가는 사막의 태양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공연단이 나타났다. 성인 남성 둘은 모래 위에 앉아 피리를 불며 음악을 연주했다. 네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꼬마 여자아이 둘은 잔뜩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걸친 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닐까말에게 물어보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이 팁을 줄 테니 나 보고는 그냥 있으라고 했다. 물론 사정이야 있겠지만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저렇게 돈벌이를 하는 것을 보니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조용해진 사막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모래 위에 이것저것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봤으나 바람이 불어 금세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 한 마리가 모래 위에 자국을 남기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도 관찰했다. 만약 혼자 사막에 있었다면 이런 벌레만 봐도 반가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낙타 등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도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저녁과 캠프파이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외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여러 인도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캠프파이어도 즐겼다. 사실 그날은 합격한 회사의 사업부 배치 설명회가 있는 날이었다. 메일로 불참한다고 회신을 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인도에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노 프라블럼이었다. 한참 캠프파이어를 즐기고 있는데 익숙한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오빤 강남스타일"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노래를 인도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듣게 될 줄이야. 한창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핫할 때이긴 했는데, 인기를 정말 실감했다. 인도인들은 발리우드 무비에서 본 것처럼 장작을 둘러싸고 춤을 추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초저녁 밤하늘에는 그렇게 별이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날 기차에서 자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인지 졸려서 이른 밤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세시쯤 잠이 깨서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금세라도 후드득 하고 쏟아질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넋을 잃고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았다. 카메라에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새도록 별을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다. 아쉽지만 텐트로 돌아가 눈을 감고 머릿속에 별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혼자 별을 보던 내가 별들이 보기에 외로워 보였던 걸까, 그래서 자이살메르에서 그를 만나게 해 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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