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온 Feb 15. 2021

골드 시티를 거닐다

이튿날 아침, 텐트 밖에서 나를 부르는 나빈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디디~”(힌디어로 누나라는 뜻)

눈곱만 떼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이미 나빈 가족은 베이스캠프를 떠날 준비를 마친 듯했다. 내가 너무 잘 자는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다고 했다. 텐트 안으로 다시 들어온 나는 대충 씻고 후다닥 짐을 챙겨 나왔다. 렌트했던 차는 자이살메르역에 다시 반납했다. 역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드디어 자이살메르 성으로 이동했다. 


자이살메르 성은 인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성이다. 무려 1156년에 지어졌다는 성에는 현지인들도 거주 하지만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과 레스토랑 그리고 숙박업소 역시 아주 많았다. 왕관 모양을 한 커다란 성은 늠름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 곧 자이살메르를 떠날 나빈 가족은 각자 기념품을 고르기 바빴다. 전통 의상과 스카프, 장신구, 카펫, 수공예품들까지 살 것은 차고 넘쳤다. 


나빈은 알록달록한 모자를 써보더니 무척 맘에 들어했다. 그는 루미타에게 한참 동안 애원하는 눈빛을 발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루미타는 여기저기에서 장신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한 끝에 성 입구의 아트샵에서 전통 수공예 천을 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어디에 쓰려고 사는 거예요?”

“이 천을 문에 걸어둘 거예요. 그럼 그 문으로 좋은 일이 들어오거든요.”

“아하!”


나는 여행할 때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다. 물론 첫째로는 돈을 아끼려는 마음이 제일 크다. 다이소에서 고작 일이천 원짜리 물건을 사는 것에도 몇 십분 고심한 끝에 사는 자타공인 짠순이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짐을 늘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배낭 하나만 메고 다니는 것이 세상 편하다. 인도에 갈 때는 옷도 몇 벌 챙겨가지 않았다. 굳이 예쁜 옷을 챙겨 입을 필요도 없고, 인도는 물가가 싸서 필요하면 현지에서 옷을 사 입을 요량이었다. 또한 결국 시간이 지나면 one of 먼지 쌓인 예쁜 쓰레기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행을 기념하는 것은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사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이살메르는 규모가 작아 모든 구경거리를 걸어서 구경할 수 있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보고도 오히려 시간이 남을 수도 있다. 나빈 가족의 쇼핑이 끝난 후 우리는 하벨리와 호수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하벨리는 자이살메르의 옛 귀족들이 살던 저택이다. 6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그 건물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자이살메르는 중앙아시아와 유럽과의 교역이 활발하던 시절 아주 번성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18세기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육로 무역이 쇠퇴하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말았다. 귀족들의 거주지를 보니 번성했던 시절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가디 사가르 호수는 자이살메르 성을 등지고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호숫가의 건물들 역시 온통 모래빛이었다. 호수는 기대했던 것보다 멋진 풍경을 선사했다.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오리배와 작은 돛단배도 있었다. 물론 나는 전혀 유혹을 느끼지 않았지만. 호수에는 많은 메기들이 살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던지는 과자 부스러기에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메기들은 놀랍도록 컸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에 메기는 깨끗하지 않은 물에서도 잘 사는 물고기라고 했다. 인도 어디를 가도 물이 맑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우다이푸르의 호수가 가장 맑았던 것 같다.


호수에서 나와서 이제 곧 떠나야 하는 나빈 가족과 함께 마지막 셀카를 찍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2박 3일 동안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루미타와 나빈도 그런 나를 보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우리는 성 입구의 한 베이커리에서 마지막 식사를 간단히 먹기로 했다. 베이커리의 이름은 ‘저먼 베이커리’. 예전에 여행 왔던 독일인으로부터 제빵을 배운 인도인이 운영한다고 어느 여행 책에서 봤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먼 베이커리가 성 밖에 하나 더 있었다. 인도에서는 같은 상호를 가진 게스트하우스나 식당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한 곳이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가 되면 같은 상호로 문을 여는 곳이 생기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상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가 보다. 둘 중 어느 곳이 여행책에서 소개한 저먼 베이커리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날 이후 성 안 저먼 베이커리의 단골이 되었다. 아몬드 쿠키가 예상외로 맛있었다.


다음 일정에 따라 나빈 가족은 다른 도시로 떠나야 했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 함께 가서 떠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여행하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떠나는 고마운 닐까말. 그는 집에 돌아가면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인화한 뒤 액자로 걸어둘 것이라고 했다. 다음에 인도에 또 온다면 그들의 집으로 꼭 놀러 오라고 했다. 인도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마치 신이 온 듯이 대접한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나 함께 여행을 하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눈인사와 손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빈 가족을 태운 버스는 먼지바람만 남기고 떠나갔다. 그들을 보내고 다시 성안으로 돌아온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전 07화 사막의 밤은 아름다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