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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Feb 22. 2021

골드 시티의 밤

프랑스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오드리. 밝은 연갈색 긴 곱슬머리에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푸른색 숄과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새하얀 얼굴, 푸른 눈동자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묻지는 않았지만 나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인도를 육 개월째 여행 중이며, 앞으로 육 개월 더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가 무척 부러웠다. 오드리를 만나기 전 이미 나는 다음에 인도에 오면 년 정도 여유를 갖고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도를 제대로 여행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았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이동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곳이라 원하는 만큼 돌아보려면 일년이란 시간도 절대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인도를 여행하는데 돈은 크게 들지 않는다. 나는 이십사 일을 여행했는데, 비행기 값을 제외하고 총 사십만 원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하루에 이만 원 정도면 숙박비와 식사 등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비교적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들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더 저렴한 곳도 훨씬 많았다. 그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육 개월째 여행 중이지만 프랑스에 있을 때보다 훨씬 돈을 적게 써서 부담이 적다고 했다.


어디서든 여행자들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얼마동안 여행 중인지, 이전에 어느 도시에서 이곳으로 왔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지금까지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추천하는 맛집이 있는지……. 그녀는 당분간은 자이살메르에 계속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인도인인 남자친구가 이 곳에 함께 있다고 했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른 여행자들과의 대화와 한 가지 달랐던 점은 프랑스어로도 이따금씩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부전공한 것은 오직 여행할 때만 유용했다. 물론 그 대화 역시 간단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아직까지는 여행할 때 외에 부전공을 써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사이 어느새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그녀와 나는 각기 다른 피자를 한 판씩 주문했는데, 둘 다 맛이 괜찮았다. 바삭하게 구워진 도우 위에 토마토와 야채, 치즈가 잔뜩 올려져 있었다. 피자를 한입 먹고 야경을 보며 콜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오랜만에 마시는 탄산음료에 나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크-"

오드리는 맥주를 한 병 마셨다. 피맥은 진리라지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여행을 가서도 술보다는 늘 콜라를 주문하는 편이다. 우리는 콜라와 맥주가 든 잔을 쨍그랑 부딪쳤다.

“Cheers!”


루프 탑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뷰가 멋진 곳이었다.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어둠이 내려 온통 캄캄한 풍경을 드문드문 노란 가로등 불빛들이 비추고 있었다. 밤 풍경 역시 골드 시티라는 이름답게 금빛이었다. 야경을 즐기며 맛있게 피자를 먹고 내려와 우리는 인사를 나눴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See you”

“See you. Good night”

언제 다시 볼지는 모른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볼 수도 있고, 평생 안 볼지도 모른다. 그녀의 나이도, 성도 알지 못한다. 여행 중의 만남은 단순해서 좋았다. 그 사람의 배경, 직업, 사는 곳 따위는 알 수 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그 공간, 그 시간을 공유하고 그 속에 함께 존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 그들에게 오히려 누구에게도 말 못 한 고민이나 속마음을 더 쉽게 털어놓을 때가 많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야기하듯 스스럼없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나예요, 네기.”

“??????”

그는 낮에 본 게스트하우스 직원 중 한 명이었다. 체크인을 할 때부터 이상하게 느끼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치근덕거리더니 느낌이 싸했다.

“무슨 일 있나요?”

내가 묻자 그는 나와 같이 놀고 싶어서 놀러 왔다고 문을 좀 열어달라고 했다. 분명히 정상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도 잠겨 있던 문을 중, 삼중으로 굳게 걸어 잠그고 불을 껐다. 잘 것이니 돌아가 달라고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몇 분이나 더 문을 똑똑 두드리며 궁시렁거리더니 내가 계속 대꾸도 하지 않자 그제서야 돌아갔다.

“휴…….”


두 번의 인도 여행 후에 깨달은 것은 인도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는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다른 게스트하우스에서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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