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챙겨 나와 저먼 베이커리로 향했다. 전날 나빈 가족이 떠나기 전 함께 끼니를 때웠던 그곳이다. ‘사랑해요 코리아’를 비롯해 여기저기 적힌 한국어 메뉴가 눈에 띄는 곳이었다. 이 날도 빵을 하나 주문하고, 후식으로 먹을 디저트를 고르기 위해 쇼케이스를 훑어보았다. 여러 디저트들 중에서 초코바나나 케이크와 마카니아 라씨를 골랐다. 역시나 한국에서 먹는 케이크 맛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렇지만 저먼 베이커리의 디저트와 빵은 아주 훌륭한 편이었다. 인도 여행 내내 다른 빵집들을 가보며 깨달았다. 그곳이 가장 맛있는 베이커리였다는 것을.
가게 앞에는 테이블이 네다섯 개 있었다. 쇼케이스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한가한 시간이어서인지 베이커리 친구들이 주방에서 나왔다. 최수종을 닮은 비노드. 그리고 역시 어느 한국 연예인을 닮았지만 닮은 이의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한 라파엘. 내가 한국인이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 알았다며, 비노드에게 최수종이라는 배우를 닮았다고 말해주자 그는 수줍게 웃었다. 햇살도 좋고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은 항상 모자나 스카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40°C가 넘는 무더운 여름 날씨에만 익숙해서일까? 베이커리 친구들 역시 그랬다. 비노드는 빨간색 니트 모자를, 라파엘은 카키색 뜨개모자를 쓰고 있었다. 갑자기 가방 속에 든 물건이 생각났다. 나는 그들에게 핫팩을 선물했다. 사막의 밤이 춥다기에 핫팩을 몇 개 챙겨 왔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그렇지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쓰지 않았었다. 옆집 라씨 가게 아저씨까지 가세해 핫팩을 서로 더 갖겠다고 싸우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라씨 가게 아저씨는 보답으로 내게 자이살메르 엽서 세트를 선물해주었다. 무척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그들이 아옹다옹하는 사이, 가게를 둘러보며 내가 물었다.
“메뉴판에 한국어는 직접 적은 거예요?”
“아니요. 여행 온 한국인 손님들이 적어줬어요.”
“아하~”
“우리 한국어 가르쳐주세요.”
“좋아요. 대신 나도 힌디어 가르쳐줘요 그럼.”
그렇게 즉석에서 한국어 교실과 힌디어 교실이 열리게 되었다.
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공책과 펜을 가지고 나왔다. 먼저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영어 알파벳과 함께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이름에 들어가는 자음과 모음을 다시 하나씩 설명하며 한국어로 공책에 써주었다.
“아~”
합창하며 바로 이해하는 그들을 보며 역시 한국어는 우수하다며 급 세종대왕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씨 아래에 직접 따라 써보게 했다. 삐뚤빼뚤 하지만 꽤나 잘 따라 썼다. 뒤이어 힌디어 시간이 되었다. 힌디어의 자음과 모음은 도저히 따라 쓰지 못할 것 같아서 깔끔히 포기하고, 나는 말하는 것만 배웠다. 이날 배운 간단한 서바이벌 힌디어를 여행 내내 무척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렇게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여섯 명쯤 되는 인도인의 무리가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내 옆에 한 줄로 서더니 한 명씩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인도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서양인보다 동양인을 보면 더 신기해한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잠시 고민했으나 문제가 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연예인이나 정상회담을 한 정치인이라도 되는 양 줄을 서있는 그들과 차례대로 악수를 하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또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겠냐며.
자이살메르 성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매일,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저먼 베이커리에 갔다. 그곳은 성의 입구에 있어 매번 지나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고, 밤낮으로 나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친구가 되었다. 베이커리 친구들은 내가 갈 때마다 서비스 메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주방에서 짜이 만드는 것도 보여주며, 한글 선생님 대우를 톡톡히 해주었다. 잘 있겠지 내 인도 친구들, 내가 가본 인도 최고의 베이커리 친구들. 다시 자이살메르에 간다면 나는 분명 제일 먼저 그곳에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