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와 나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죽마고우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어제 처음, 그것도 단 한번 만난 사이였다. 내가 호숫가에 가는 중이라고 하자 그녀도 함께하기로 했다. 오드리는 새로 산 나의 옷을 보고 예쁘다며, 어디에서 샀냐고 물었다. ‘A가게와 B가게의 사이 골목 사이로 들어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며 설명을 했더니 그녀도 지나가다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호수에 도착해서 우리는 서로의 사진도 찍어주고 셀카도 함께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놀다 마을로 돌아온 우리는 또다시 ‘See you’라는 말을 하며 헤어졌다.
사실 자이살메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낙타 사파리를 위해 잠시 거쳐가는 마을이다. 나빈 가족처럼 반나절만 구경하고 떠나기도 하고 하루, 혹은 길어야 일박 이일 정도 머물고 떠나는 곳이다. 그런데 왜인지 나는 그 작은 마을이 참 편하고 좋아 며칠을 더 머물렀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골목을 지나면 인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모두가 마치 원래부터 알던 이웃 같았다. 자이살메르에 온 지 삼 일째가 되어 이튿날 자이살메르를 떠날 작정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에 몇 번이나 걸었던 길을 걷고 또 걷고, 들어가 보지 않았던 가게들도 들어가 보았다. 마을의 곳곳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그러다 선선한 바람이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소리에 한 사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루나. 본인의 게스트하우스 옥상 뷰가 아주 멋지니 와서 짜이 한잔하며 구경하라고 했다. 웃는 모습이 선한 사람 같아 보였다. 인도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의 말은 진짜였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보이는 경치는 여느 전망대 부럽지 않았고,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풍경소리는 더 가까이서 귓등을 때렸다. 내가 경치와 풍경소리에 잠시 취해있을 때, 루나는 따뜻한 짜이와 함께 자신의 보물 1호라 소개하며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을 가져왔다. 그는 참 잘 웃었다. 그의 따뜻한 미소만큼이나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짜이를 마시며 방명록을 읽어보니 온통 루나를 칭찬하는 글들이었다. 재밌는 여행객의 사연들도 있어 읽는 내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름다운 사원, 풍경소리, 따스한 햇살 그리고 달달한 짜이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음날 자이살메르를 떠나기로 했던 마음을 이내 고쳐먹기로 했다. ‘쫓기는 일정도 없는데 그냥 내가 좋은 곳에 오래 있자!’
이튿날 아침, 원래 묵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루나의 숙소에서 이틀을 더 묵기로 했다. 그는 나를 핑크색 커튼이 달린 전망 좋은 방으로 안내해줬다. 비록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루나가 끓인 물이 담긴 양동이를 가져다주면 찬물과 섞어가며 씻어야 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도에서 묵었던 숙소 중 가장 내 집처럼 마음 편히 지낸 곳이라는 것.
루나가 짜이를 끓여준다고 옥상으로 나를 불렀다. 그런데 낯익은 머플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예전에 한국인 손님이 선물로 주고 갔는데 너무 따뜻하다며 해맑게 웃는 루나. 그가 두르고 있던 머플러는 대한항공 기내 담요였다. 나는 그저 머쓱하게 웃으며 짜이 끓이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의 레시피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설탕이 들어갔다. 내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달고나가 되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맛있으니까 됐다. 쭉쭉 들이켰다. 그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는 내내 루나는 내게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짜이를 끓여줬다.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배움을 주고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이지.” - 지구별 여행자 中」
어쩌면 루나는 나를 자이살메르에 남게 하려는 안내자가 아니었을까?